송대 왕안석의 신법의 둘러싸고 신법당과 구법당이 서로를 배척하는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송 영종 시기에 이르러 兵冗, 官冗, 宮冗이라는 세 가지 방면의 낭비로 인하여 국초 이래의 축적이 서서히 탕진되었다. 이에 영종이 왕안석을 등용하여 신법을 시행하자, 이를 반대하는 이들과 대립하였다. 사대부들은 신법이나 구법당 중에서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왕안석의 개혁 이후에는 당쟁은 더욱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갔다. 신법은 사실상 실패하였고, 더 나아가 끊임없는 당쟁은 국론을 분열시켜 급기야 송은 1127년 금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송사}
신채식, {동양사개론}, 삼영사, 2002 신성곤/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9. 강용규, {인물로 보는 중국사}, 학민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