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회의가 파리에서 열렸다. 그런데 패전국 독일의 중국내 이권이 중국에게 회수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베르사유 회의 결과에 대하여 중국인들은 분노하였고 마침내 반일감정을 폭발시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인들은 외교 당사자들을 구타하거나 그의 집을 불사르기까지 하였으며, 학생, 시민, 노동자들은 罷課, 罷市, 罷工이라는 이른바 三罷運動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이에 굴복하여 베르사유조약의 조인을 거부함으로써, 대중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최초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