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일에 왕태후 임씨(任氏)가 훙(薨)하였다. 이 해 여름에 충희(冲曦)가 죽었을 때, 왕이 태후가 비통해할 것을 두려워하여 숨기고 알리지 않았더니, 두어 달 뒤에 태후가 희의 죽음을 듣고 속마음으로 여러 장수들이 살해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분노하고 원망하여 기질(氣疾 마음 탓으로 생기는 병)을 얻었다. 그때 평량공(平涼公) 민(旼) 또한 치질(痔疾)을 앓아서 오랫동안 들어가 뵙지 않았더니, 태후가 민(旼)과 희(曦)가 같이 화를 당한 것이라고 의심하므로, 왕이 민에게 명하여 작은 가마를 타고 들어가 뵙게 하니, 태후가 기뻐서 울며 말하기를,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기에 너의 낯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했다. 민이 왕께 아뢰기를, “어머니의 병환은 노심 때문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 청하건대, 음악을 베풀어 즐겁게 하여 풀어 드리소서." 하였다. 왕과 민이 함께 상수(上壽 장수를 빌며 올리는 술잔)하여 즐겁게 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얼마 안 되어 다시 위독하여져서 돌아가니, 수(壽)가 7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