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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인 무가치함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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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살해행위에 목적과 방향이 있는 것일까? 드러난 것으로는 그의 살인충동이 부자와 약자에게로 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강자였지만 신체적으로는 약자였으며 여성들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약자였다. 부자이나 약한 노인을 살해함으로써 그는 부자에 대한 증오를 표현했고 가난한 여성에 대한 살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권력을 표현했다. 어떤 조직도 대표하지 않는 개인인 그의 살해행위에서도 약자와 여성을 희생시키는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관계는 어김없이 재연된다. 하지만 살해행위가 반복되면서 분노나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나 방향은 점점 흐려지고 점점 무차별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 뭣하나. 살아 있을 때까지 죽이자.”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자신이 처한 열등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 자신의 우세, 자신의 권력를 입증해 보고자 하는 심경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생각은 오히려 우리 시대의 삶의 일반적 무가치함에 대한 좀 더 극한적인 진단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삶이 살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다는 판단을 넘어, 모든 사람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당신들 모두도 살 가치가 없다는 것. 누구도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인간사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했고 무가치하다는 인식과 통한다. 살아있는 것들의 무가치함이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인식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파괴가 정당한 것이라는 심판자적 규정과 행동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인지능력의 저하, 신체생리적 왜곡으로 인한 그의 망상 혹은 주관적 판단착오인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사회현실과 삶의 과정에 대한 하나의 적극적 진단인 것인가? 이 물음을 생각함에 있어 우리는 유영철(1970), 강호순(1969), 정남규(1969) 등이 모두 권위주의 체제에서 성장하고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될 시점에 사회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조정환, <분노의 정치경제학>,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32-33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3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