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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꽃.양>이 보여준 심연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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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의 신자유주의 기업철학을 자본철학 일반으로 환원하여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했던 박노해는 1991년 초 구속되지만 1998년 8월 수감 7년 5개월만에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된다. 하지만 정확히 1년뒤인 1999년 8월에 대우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김우중은 해외로 도피한다. 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7년 말에 시작된 외환위기는 김우중-김영삼식 부채경영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은 신자유주의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노사정위를 통해 그것을 대중적 수준에서 심화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번에는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우와 유사한 과다한 차입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의 결과로 경영위기에 처한 현대자동차는 1998년 4월, 4만 6천명의 노동자 중에서 1만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섰다. 이 대규모 정리해고는 기업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면화하는 신호탄이자 최전선이었다. 이에 맞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장을 점거하고 36일간의 전면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였던 노무현의 중재를 거친 후 노조는 결국 277명의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말았다. 이미 8천여명의 희망퇴직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정리해고가 조합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노사합의를 통한 이 정리해고는 하나의 모델케이스가 되어 이후 모든 사업장에 일반화되면서 정리해고의 실질적 제도화를 가져오게 된다. 36일간의 파업투쟁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은 이 노사합의안에 대한 총회의결에서 압도적 다수가 반대의견을 표시했다. 그것은 이 합의안을 받아들인 노조지도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반대의결에도 불구하고 투쟁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정리해고는 원안 대로 집행된다. 그렇다면 이 정리해고에서 누가 해고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277명 중 144명이 현대자동차 공장의 구내식당 여성노동자였다. 그 숫자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리해고 발표가 있기 전 구내식당여성노동자의 전체 숫자가 276명이었다. (이것은 전체 정리해고 대상자 수에서 1명이 적은 숫자다.) 이 중 132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나고 끝까지 농성텐트에 남아 있던 식당여성노동자의 총 수가 바로 144명이었다. 이로써 식당여성노동자 전원은 희망퇴직하거나 정리해고되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48세, 평균근무연수는 14년이었으며 가난한 가정의 실질적 가장들이었다. 이들은 집에서 남편, 자녀, 시부모를 위해 ‘밥’을 지었고 공장에서는 남성 노동자의 밥을 지었다. 파업이 벌어지자 밥주걱부대로 불리며 투쟁의 ‘꽃’이 되어 사수대의 밥을 지었다. 하지만 노사합의를 통해 이들을 전원 정리해고하기로 결정한 노조지도부는 36일만에 파업천막을 철거한다. 식당여성노동자들은 남성 조합원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방패막이 희생‘양’으로 이용된 후, 자신들이 따르던 조합지도부에 의해 버림받았다.  
 
조정환, <분노의 정치경제학>,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8-20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