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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면 따지는 문화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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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의 하나이다. 우리 문화 속에서 체면을 중히 여기는 전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속담에 “양반은 죽어도 짚불엔 안 쬔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양반의 새끼는 고양이 새끼, 상놈의 새끼는 돼지 새끼”라는 속담이 있다. 양반의 체면치레를 빗댄 말이다. 또 “우리나라에 노비가 있어 풍교를 바르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외를 엄히 하고 귀천을 매겨 예의가 행해지는 것이 여기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정인지의 말처럼, 노비가 없으면 양반이나 사대부가 체면을 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허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을 비꼬는 말이다. 최상진은 체면을 자기과시적 체면과 자기완성적 체면으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과시적, 권위적, 타인 의식적, 겉 치레적 측면을 강조하면 체면은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반대로 완성적 욕구에 의한 체면의식과 이로 인해서 체면을 제대로 차리거나 남의 체면을 세워 줄 때 사회적 관계가 원활해진다(최상진, <<한국인 심리학>>). 체면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충분히 긍정적일수도 있는 셈이다. 누구나 체면을 세우는 일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세종시대의 이름난 재상 맹사성이 낙향하여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개울 건너편에서 한 젊은 선비가 그를 불렀다. 젊은 선비는 양반 체면에 버선을 벗고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릴 수 없다며, 맹사성에게 업어서 건네주기를 부탁했다. 맹사성은 선비를 무사히 건네주었다. 선비는 이어 요즘 고향에 내려와 계시는 맹정승을 뵙고 인사나 드리려 한다면서 정승 댁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자 맹사성은 이미 보았으니 그냥가라고 일렀다. 영문을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선비는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맹사성은 “허허, 젊은이가 노인 공경할 줄도 알아야지”라고 껄껄 웃었다. 선비는 버선을 벗을 새도 바지를 걷을 새도 없이 개울을 다시 건너서 도망가 버렸다. 버선을 벗을 수 없는 양반의 체면 때문에 낭패를 본 사례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조선시기 백호 임제가 평안도사로 가는 길에 개성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황진이가 석 달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사들고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주고, “청초(靑草) 우거진 골짜기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 사람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라고 아쉬운 심정을 시 한 수로 읊었다. 그러나 천한 기생인 황진이의 무덤에서 사대부 출신으로 벼슬하는 자가 시조를 읊고 지체한 일은 양반의 체통을 구긴 행위였다. 때문에 임제는 임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양반의 체통을 구겼다”는 죄목으로 파직을 당하였다. 
 
김창규, <지식인의 분노와 부끄러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4-246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4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