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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분노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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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제에는 지난 1986년 4월 전방입소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김세진의 어머니가 참가했다. 그녀는 조사를 통해 “어미들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하고나. 어버이들이 저지른 죗값을 어이해 꽃다운 나이의 너희들이 희생의 제물이 된단 말이냐. 저들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일진대”라고 말했다. 추도식이 끝나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 30여 명은 영정 앞에서 “철아! 다 잊어버리고 잘 가그래이.”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독재에 저항한 학생의 구속이 증가하자 1984년 5월 학부모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석방을 구차하게 구걸할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자식의 장래는 물론 나라의 미래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해 7월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가 결성되었다. 법정에서 “독재정권 타도하자!”는 학생들의 당당한 요구에 학부모는 “애국학생이 용공이냐”, “독재정권 물러나라” 등의 머리띠를 두르고 학생의 구호에 화답했다. 이 모임은 기존의 구속노동자, 장기수, 재야운동 구속자 가족들과 힘을 합쳐 1985년 12월 민가협을 결성했다. 권력의 불의(不義)가 어머니를 열렬한 투사로 만들었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체포되거나 구속되면 맨 먼저 달려왔고, 각종 시위 현장에서 선두에 섰다. 박종철의 죽음에도 어머니와 여성들이 가장 먼저 투쟁에 나섰다. 15일 구속자 가족 등 20여 명이 기독교회관에서 철야항의농성을 하면서 “박 군만이 아니라 치안본부에 조사 중인 우리의 가족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1월 16일 민가협 관계자 40여 명이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농성을 했을 때 경찰이 16명을 연행했다. 민가협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여성들이 박종철의 죽음에 대해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언론사로 전화를 걸어 “가슴이 떨려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하느냐” 등의 분노를 표현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두렵다”라는 표현처럼, 참고인 자격으로 끌려간 학생의 죽음은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질 수 없는 자신들의 문제였다.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은 학생과 자녀를 둔 부모에게 5공 권력에 대한 공분을 일으켰다.  
 
류시현, <87년, 뜨거운 여름>,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21-222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2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