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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과 제창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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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국가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은 허용해도 ‘제창’은 허용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광주의 ‘5·18 기념식’이 파행적으로 거행되었다. 박근혜 정부 첫 해라 좀 더 큰 화제가 되었을 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 공식행사에서 배제시키려는 보수정권의 시도는 수 년간 반복되어 왔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도 취임 첫 해인 2008년을 제외하고 2009년부터는 이 노래의 ‘제창’이 공식행사의 식순에서 빠졌고 식전행사의 기악 연주 등으로 밀려났다. 음악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제창’은 ‘합창’의 부분집합일 뿐이지만, 국가보훈처의 엄밀하지 못한 음악용어법상으로 ‘합창’은 무대에 선 전문음악가들이 성부를 나누어 부르는 감상용 노래를 뜻하는 반면 ‘제창’은 객석에 앉은 청중들까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뜻했다. ‘합창은 괜찮지만 제창은 안 된다’는 얘기는 결국 객석의 청중들은 침묵한 채 듣기만 하라는 주문이다. 2008년 보수정권의 재출범 이래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노래로 대체하려는 기도가 있어왔다. 2010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때 아닌 <방아타령>을 연주하게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황급히 식순에서 빼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 당시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행사의 악단 연주로만 들을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2009년에 이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하기 위한 ‘5월의 노래’ 공모 방침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비판에 곧바로 철회했지만, 올해 다시 공모 계획을 세우면서 4천3백만 원의 관련 예산을 책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한 보훈처의 공식입장은 “특정 정당이 당가처럼 부르는 노래가 국가기념행사에서 불러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부 반공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이 제기하는 주장은 이보다 더 과격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의 노래’라는 것이다. 이들은 1991년에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서 이 노래가 주제곡으로 쓰였다 주장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임’이란 결국 북한의 김일성을 뜻한다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주제곡이 아니라 극의 후반부 회상장면 등에 깔리는 삽입곡으로 쓰인다고 한다.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고려할 때, 이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삽입곡으로 쓰는 것은 사실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영화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삽입곡으로 들어있다고 하는데, 이 노래도 덩달아 ‘빨갱이의 노래’로 지목되는 것은 아닐지 궁금하다.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이토록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의 뿌리가 전두환 군사정권과 연결되어 있는 한국의 반공 보수 세력들이 아직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 노래와 결부된 과거에 대해 ‘기억의 정치’를 수행하려 할 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상징적 노래에 ‘종북’의 색깔을 입힘으로써 광주민중항쟁과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퇴색시키는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 그들의 내밀한 전략이다. 사실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려워할 사람은 더 이상 없다. 21세기의 청중들에게 이 노래는 군가나 심지어 일제시기 독립군가처럼 고루하게 들릴 것이며 옛 추억을 자극하는 철지난 유행가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온해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보수 세력의 정략적 도구로 역이용될 만큼 본래 가지고 있던 저항가요로서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합창’이냐 ‘제창’이냐 하는 것도 본질적인 물음이 아니다. ‘부르는 노래로서의 제창’이 ‘듣는 노래로서의 합창’으로 전환되는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이 한때나마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표현한 민중가요가 제도적으로 순화되어 가는 일반적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그 출발점은 ‘진보 정권’으로 간주되어 왔던 김대중 정부와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정권 시기로 소급된다. 
 
최유준, <친밀함의 스펙터클을 넘어>,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94-196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9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