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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가 뭐길래”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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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슬>의 구체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축은 두 개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해안선에서 5Km 밖에 거주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들, 다른 하나는 군인들을 피해 ‘큰넓궤’ 동굴에 몸을 숨긴 채 지내는 마을 사람들이다. 두 집단의 유일한 공통점은 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는 것인데, 영화는 경계에 놓인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상이한지를 보여줌으로써 두 집단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먼저 군인들이 있는 공간은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버려진 공간이기도 하다. 처참하게 죽은 한 여인의 시신이 구겨져 있는 장롱 옆에서, 아마도 그 여인을 찔렀을 칼로 과일을 깎아먹는 군인들, 죽은 줄 알았던 시신 옆에서 배설을 하다 그의 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처리를 명령하는 김 상사. 감독은 이렇게 군인들이 먹고 배설하는 장면에 죽은 자들을 배치하여 당시의 광기어린 폭력의 현장을 보여준다. 반면 마을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모습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비좁은 공간에 숨어 일제 총과 미제 총의 성능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돼지밥을 주러 마을로 내려가겠다는 원식이 삼촌, 총도 피할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며 자신의 말다리를 자랑하는 상표.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모습은 이들이 죽음 직전에 놓여있다는 사실과 겹치면서, 결국 사건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수렴된다. 역사적으로 1948년 제주는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충돌했던 공간으로 규정되어 왔다. 제주는 단독선거가 무산된 유일한 지역이었고, 이는 새로이 건설될 남한 정부와 미군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4·3의 주동자들은 남한의 단독선거에 반대하며 남북의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했는데, 당시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이 바로 ‘빨갱이’였다. 그러나 <지슬>이 그리고 있는 제주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공간이 아니다. 유린당하는 순덕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 여자도 폭도입니까?”라고 묻는 박 일병과 폭도의 목을 따오지 못해 기합을 받으며 “폭도가 있기는 있는 거냐?”고 반문하는 신병, 그리고 무엇보다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도대체 빨갱이가 뭐길래”라고 한숨짓는 무동 어머니의 모습은, 결국 당시 죽이는 이들도 죽는 이들도 이데올로기와 얼마나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제목이 ‘지슬’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감자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 지슬은 영화 속에서 누군가에게 건네는 음식이다. 그것은 신병이 하루 종일 굶은 박 일병에게, 박 일병이 죽음 직전에 놓인 순덕에게 주는 음식이다. 또한 지슬은 함께 나눠먹는 음식이다. 특히 무동이 불에 탄 자신의 집에서 죽어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녀가 품고 있던 지슬을 가져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눠먹는 장면은 지슬의 상징성을 극적으로 전달한다. 건네고 나누는 음식인 지슬은 바로 바깥의 이데올로기가 제주에 들어서기 이전,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이다. 마치 영화는 이것을 지켜보라는 듯이 지슬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그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를 아주 길고 느린 화면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4·3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속되었을 제주 사람들의 순박한 일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데올로기와 상관없는 죽음들, 이로 인해 중단된 제주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면서 관객이 느끼게 되는 감정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정길’의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정길은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단지 항아리로 물을 나르며 군인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막내이다. 그런데 영화의 두 장면에서 정길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순덕이 유린을 당하는 움막 앞에 서서, 그리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현장 한가운데 서서 그는 미동 없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렇게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무엇인가를 묻거나 요구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인물의 눈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바로 관객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정길도 카메라를 통해 관객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들 또한 정길이 놓여 있는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길이 놓여 있는 죽음의 현장과 현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정말 무관한지를 묻는다. 영화 <26년>이 전두환이라는 한 인물에게 사건의 책임을 지우고, 그를 향한 관객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촉구한다면, <지슬>에서 정길의 시선은 관객에게 어떤 ‘부끄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부끄러움은 그동안 1948년 제주를 알지 못했다는 것,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인식과 함께 무고한 죽음들이 반복되었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렇게 영화 <지슬>은 과거의 잊혀졌던 4·3을 관객과 연결하면서, 현재 우리들의 문제로 성찰하기를 요구한다.  
 
강소희.주선희, <영화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81-184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8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