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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화된 과거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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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역사극들은 은폐된 과거사를 폭로하거나 사건의 이면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려고 한다. 그러나 <26년>은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관심 갖지 않는다. 영화는 5‧18의 전말을 낱낱이 파헤치기보다 사건 이후 등장인물들이 살아온 삶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한다. 그 속에서 그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삶 깊숙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건 자체의 진상이 아닌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의 제작자인 최용배 대표는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가해자는 온전히 단죄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한대로 <26년>은 역사가 결코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다만 흔적이 아니라 여기, 오늘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그것의 현재성을 이야기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먼저 5‧18이라는 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데서 나타난다. 그러한 방식은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사건 자체의 잔혹함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화는 이후 희생자들의 유족인 진배, 미진, 정혁의 삶을 조명하는 데 큰 비중을 둔다. 그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영화는 그들의 지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사건 이후 줄 곳 TV에 전두환이 나올 때마다 정신을 놓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어린 진배와 술로 세상을 살아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미진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지만 그들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날 이후 17년이 지난 어느 날, 포장마차를 하는 진배의 어머니는 새로운 삶을 꾸려 잘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런데 TV에 전두환의 모습이 등장하자 그녀는 의식을 잃는다. 군복을 입은 눈 앞의 아들을 그날의 군인으로 착각하며 칼을 휘두른다. 그때 어머니를 안으며, “아따, 우리 엄마 하나도 안변하고 그대로고만, 하나도 안변했네, 하나도!”라고 말하는 진배의 말에서 우리는 그들의 상처가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한편, 25년이 흘러 경찰이 된 정혁은 전두환 대통령의 외부 나들이 차량을 위해 교통 신호를 임의로 변경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누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를 보호하는 데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뒤틀린 현실에 고통스러워한다. “미안하다 누나야, 참말로 사는 게 더럽고 치사해야”라는 울부짖음은 현실의 모순을 담아낼 적당한 말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해, 미진의 아버지는 전두환의 저택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분신한다. 조근현 감독은 그날 이후 26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피해자들의 복수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호소한다. 사실상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각을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다. 피해자의 고통이 고조될수록 가해자의 안락한 삶은 더욱 부조리해 보인다. 전두환의 외부 나들이 차량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들이 동원되고, 신호까지 조작하는 기이한 장면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피해자들의 불운한 삶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철저하게 호위되고 있는 저택에서 텔레비전으로 5‧18추모 행사를 보면서 발톱을 깎는 ‘그’의 모습과 상처가 난 자신의 발가락을 감싸면서 무신경하게 텔레비전을 꺼버리는 모습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이와 같이 대립적인 장면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악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러한 악에 우리는 얼마나 관대했는지, 또 피해자들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 했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주장은 주목해볼만 하다. 아렌트는 나치의 전범인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강소희.주선희, <영화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73-176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7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