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대학 마당극의 정치‧사회적 맥락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3당합당’은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 및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일을 말한다.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3당 야합’이라고도 한다. 이를 계기로 민주진영의 주요 인물인 김영삼, 김대중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좌절되었다. 이 사건을 희화화시킨 마당극이 바로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통극문화연구회 ‘삶과 마당’에서 내놓은 <삼당합탕>이다. 이 작품은 당시 이루어진 삼당합당에 대해 대권을 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암투를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의 한 장르를 빌려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 작품이 그간 이루어져 왔던 마당극과 특별히 차별화되는 요소는 ‘대사’가 없었다는 점과 등장인물이 최소화됐다는 점이다. 이 마당극에는 등장인물이 소화해야 할 대사가 전혀 없었다. 대신 마당극을 이끌어가는 언어 행위는 모두 내레이션Narration의 형식을 띤 변사의 낭송이었다. 우선 작품의 전체적인 형식이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장르를 빌려왔던 까닭에 극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대사는 필요치 않았다. 물론 그것은 형식적인 이유였을 뿐, 대사가 없었던 실제 이유는 작품을 통한 ‘의사 전달의 효용성’에 있었다. 마당의 또 다른 구성원인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만 집중해도 되도록 구성했던 것이다. 이 마당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짐작하다시피 모두 넷이었다. 삼당을 대표하는 세 명과 김대중을 연기하는 한 명이 출발 지점에서 총소리를 듣고 뛰쳐나가는 것에서부터 이 마당극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엎치락뒤치락 순위를 바꿔가며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것으로 종료된다. 이때 변사는 순위가 바뀔 때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한 멘트를 ‘객관적’으로 삽입함으로써 극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런 메시지가 강한 임팩트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의해 즉각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이었다. 등장인물들은 그 지점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행동에 대해 최대한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간혹 이러한 행동들이 관객들에 의해 의아함을 자아내는 경우 그들은 휴지(休止)를 이용하여 직접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이때의 소통은 정해진 대본(물론 대사는 전혀 없는 행위 대본이기는 하지만)에는 존재하지 않는 순전히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 자신의 판단에 의거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 마당극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들은 완전하게 등장인물의 성격에 동화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학습’이라는 장치에 의해 가능했다.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등장인물을 연기할 수 없었고, 또한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학습’은 당시 대학운동의 뿌리 깊은 원천이기도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당극에서 1번 주자(노태우 역)는 교련복을 입는다. 군부를 상징하는 것이다. 2번 주자(김종필 역)는 언제나 1번 주자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변 이의 침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으며 온갖 반칙으로 1번 주자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3번 주자(김대중 역)는 마라톤 내내 발을 절뚝거린다. 결코 앞서 뛰쳐나갈 수 없는 모양새를 연기한다. 표면적으로는 그 절뚝거림이 한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를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좌절된 희망과 분출되지 못한 분노의 또 다른 상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4번 주자(김영삼 역)는 특징이 없다. 일부러 특징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4번 주자는 이 작품의 기획 과정에서 가장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부각된다. 그것은 4번 주자와 1번 주자 사이의 모종의 관계를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으리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계획적인 인물 설정이다. 관객들의 감정 분출 지점을 미리 설정해두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 작품이 갖는 의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존에 행해졌던 대학 마당극이 주로 ‘무게’가 있는, 그리고 익히 알려진 문학 텍스트의 마당극화가 이루어진 것들이 중심이었다면 이 작품은 일단 그런 조류로부터 과감히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마당극 연행의 기획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담지하는 방식과 그 결과에서 기존의 마당극과는 차별화된 지점이 보인다. 우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굳이 전달하지 않아도 이미 관객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희망적인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던 시기에 이루어진 기습적인 3당합당은 그만큼 더 강한 절망으로 변질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조태성, <마당정신의 시학>,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62-165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6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