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12월 12일은 장개석은 장학량(張學良)과 양호성(楊虎城)에 의해 구금된 이른바 서안사변이 발생하였다. 이후 장개석은 장학량을 죽을 때까지 연금시켰다.
서안사변의 원인이 되었던 장학량 연금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해 장개석은 공산 토벌의 결정적인 기회를 상실하였고, 공산당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에 공산당 토벌의 결정적인 기회를 상실한 장개석은 분노하였다. 서안사변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뒤에 장개석은 장학량을 구금하였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장개석은 1973년 죽을 때까지 장학량의 구금을 풀지 않았다. 장개석은 공산 토벌의 결정적인 기회를 상실하였고, 공산당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