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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중 적군을 섬멸하지 못한 원균의 통분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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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육병(陸兵)이 아니기 때문에 육지에 있는 적을 주사(舟師)로서는 다시 어떻게 끌어 낼 방법이 없어 매우 통분스러웠습니다.
4일 묘시(卯時)에 여러 배로 적진에 돌진해 들어가면서 명화 비전(明火飛箭)을 쏘기도 하고 혹은 현·승자총통(玄勝字銃筒)을 쏘면서 도전하고, 정예선(鄭銳船)을 영등(永登)의 적 소굴에 나누어 보내 서로 들락날락하면서 이쪽저쪽을 공격할 기세를 보여 서로 지원하는 길을 끊도록 하였으나 그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아 섬멸할 길이 없어 분함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신(臣)은 다시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 육병장(陸兵將) 곽재우(郭再祐),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에게 상의하여 수륙(水陸)으로 합동 공격할 것을 계획하고, 길을 잘 아는 거제(巨濟) 출신 사수(射手) 15명을 뽑아 길잡이를 삼고 신이 거느린 각 선박에 육전(陸戰)을 할 만한 자로서 자원한 31명을 선발해서 곽재우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일을 단단히 약속하였습니다.
육병장 등은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에게 가서 직접 형세를 고하고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서 7일에 돌아갔고, 신 및 주사(舟師)는 그대로 외질포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선조 27(1594) 9월 29일부터 장문포(場門浦)에 둔거(屯據)한 적세(賊勢)와 접전하였는데 10월 3일 진시(辰時)에 주사(舟師)를 동원하여 적진이 있는 장문포를 공격하였지만 원균의 군대가 육병(陸兵)이 아닌 주사(舟師)였기 때문에 적을 끌어낼 방법이 없어 통분하였다. 4일 묘시에도 적을 공격했으나 적이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아 섬멸할 수 없자 분함을 견딜 수 없다고 표현하였다.
원균은 적에 대한 분개를 새로운 작전을 통해 해소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전이 실패하면 다시 분개를 표출하고 또 다른 새로운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그 화를 풀어 나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선조 56권, 27년(1594 갑오 / 명 만력(萬曆) 22년) 10월 8일(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