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존재하는 마당에는 ‘담’이 존재한다. 그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그 담의 안에도 그리고 밖에도 존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담은 ‘나’의 존재도 잊게 하는 것이다. 세계와의 단절이자 소통의 거부라고 읽힌다.
하지만 함께 존재하는 마당에도 담은 존재한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진 담이다. 그래서 이 담은 ‘사람들’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런 울림이 바로 새로운 가치 지향의 시작이 된다. 그 울림의 기저가 만약 분노라면 이 담 안에서 마당은 저항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담 안의 ‘마당’에서 생성되는 울림이 그 담을 구성하게 만들었던 사람들과의 대립과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담을 구성했던 사람들 사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면서도 결국 담 안팎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포용을 이끌어 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고도의 감성적 행위 기제를 일러 ‘마당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투쟁과 포용의 표현 방식을 우리는 ‘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놀이의 최고 성취와 그 과정을 간혹 ‘신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마당은 대개 놀이를 통해 신명을 호명하고자 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며, 그것에 응하여 성취되는 것 또한 ‘마당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당정신이 투영되는 전 과정을 일러 마당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당정신의 기저는 결국 ‘마당’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때 마당은 당연히 공간적인 개념이겠지만, 마당극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그것은 곧 시간적인 개념에서도 멀지 않음을 이제는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마당이라는 공간 안에서라면 시간의 흐름은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다른 삶 혹은 그러한 삶의 방식을 자유자재로 재현할 수 있게 하기에 마당은 또한 특별한 문화를 생성하는 동력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당은 그런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장소가 됨으로써 함께 모인 이들 사이의 결속력을 다지게 하거나 혹은 화해시키거나 혹은 포용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