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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승과 청년

노(怒)
부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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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고려 때의 일이다. 노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7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하루에 새벽, 오전, 오후, 저녁에 각각 2시간씩 네 번으로 나누어 정진(精進)하셨다. 꺼져가는 육신이지만 어떻게 불법(佛法)을 전파할까하고 부처님 전에 원력(願力)을 세워 기도하는 것이었다. 기도가 끝난 후 스님은 걸망을 지고 이 곳 저 곳을 다니다가 황룡산 아래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 곳이 불법을 전할 자리로구나.’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여러 가옥이 있고 농토가 많은 부촌이었다. 조금 떨어진 외딴집에 가서 물었다. “여보시오, 누구 계시오?” 그 때 30세 가량 되는 남자가 나왔다. “대사님,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 황룡산에 명당자리가 있다기에 부처님을 모시어 포교할까 하고 찾아 왔습니다.” “스님, 이곳은 유생들이 많아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깊은 골짜기에 풀막이라도 치고 공부를 하여 대도를 깨쳐볼까 합니다.” “스님, 그러시면 무엇을 먹고 입으며 그 쓸쓸한 무인지경에서 어떻게 사시렵니까?” “원래 중이라는 것은 풀뿌리 나무 열매로 양식을 삼을 것이요, 송락과 초목으로써 의복을 대신하고 법당이 없으면 바위굴을 법당으로 삼고 생활하는데 걸릴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과연 대사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렇게만 작정하고 산에 들어가시면 두려울 것도 괴로울 것도 없지요. 대사님, 방이 누추하지만 들어오셔서 쉬었다가 가십시오.” 노승은 나이만큼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방으로 들어가 곯아 떨어졌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보니 부엌에서 밥하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이, 이른 새벽에 누구신가?” “저의 어머님이십니다. 스무살에 홀로 되시어 저만 의지하여 고생하며 살아오고 계십니다. 대사님, 먼 길을 가시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셔야죠.” 모처럼 따뜻한 잠자리에 융숭한 대접까지 받고 보니 그 보답을 어떻게 할까하고 궁리하다가 그 청년의 어머니를 바라보더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청년은 이상하여 여쭈어 보았다. “내가 이렇게 대접을 잘 받고 가는데 그냥 갈 수 없어 이 말씀을 드리니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대사님, 무슨 말씀을 하실려는지요?” “3일 후 아침에 자네 모친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실 것이네. 내가 명당자리를 잡아 줄 것이니 다음의 방법을 꼭 지키게나. 범바위골에 묘를 쓰되 황금돌을 건드리지 말게.” 아들은 갑자기 어머니께서 세상을 뜬다고 하니 화가 나서 욕을 하며 스님을 내쫓았다.
사흘이 지난 아침, 노스님의 말대로 그 청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청년은 스님의 말씀이 옳구나 하고 당부의 말씀을 생각하려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득 ‘범바위골’만 생각이 나서 날을 잡아 묘자리를 정했다. 땅을 파다보니 황금돌이 나왔다. 당부의 말을 잊어버리고 그 황금돌을 뜯어보니 그 속에 살고 있던 수많은 벌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 중의 한 왕벌이 노스님 때문에 살던 곳을 빼앗겼다고 하면서 산중턱으로 날아가 참선하고 계시던 노스님의 뒷 목을 쏘았다. 그래서 그 노스님은 지금 미륵 부처님께서 서 계시는 장소에서 열반하셨다. 그 후 이 곳 연산 마을에서는 10년 가뭄, 10년 홍수 등의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정든 곳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고 하여 광산 김씨(전체 동네 사람들)들은 문중 회의를 열어 그 연유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묘를 쓸 때 당부의 말을 다르지 않아 노스님을 돌아가시게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보게, 노스님이 자네 집에서 주무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던가?” “예, 이곳에 미륵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전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중에서 열심히 다니면 문중이 번창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노스님의 넋을 위로하는 뜻으로 이곳에다 미륵님을 세우고 빌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렇게 하여 미륵님을 세웠다. 세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무가 미륵님 곁에서 자라 나와 에워싸고 있어, 비바람이 보호하고 그 위에서는 새도 날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가 위로는 자라지 않고 옆으로만 자라 미륵님을 감싸고 있다. 이 성지에서 기도하여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곳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된 사람은 50여 명뿐이라고 한다. 
청년이 지친 노승에게 숙식을 제공하여 극진히 대접하였으나 노승은 오히려 청년에게 모친의 죽음을 예언하며 명당자리와 금기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잃게 된다는 박탈감은 청년의 분노로 이어졌고 청년은 욕을 하며 노승을 집 밖으로 쫓아냈다. 노승의 예언대로 모친이 죽자 노승이 알려준 곳에 묘를 썼지만 금기사항을 지키지 않아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되었다. 결국 미륵불을 세워 모심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미륵신앙의 전파과정을 전하고 있다.  
{미륵 성지를 찾아서}, 우리출판사, PP 70-73. - 충남 연산 송불암 창건 설화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