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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변동 논쟁

노(怒)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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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다.”
이기채는 강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잘라 버린다.
“속량이라니 너 일본 가서 신학문 했다고 신구식 따져가며 표 내는 것이냐? 돼먹지 못하게. 앉아 천리 서서 만리, 나도 세상 볼 줄은 안다. 여기 이 구석지에만 엎드려 있어도.”
“그것이 아닙니다.”
강호는 이기채의 벽력 같은 언사에 조금도 놀라지 않고 화안(和顔)을 짓는다. 중참이 좀 지나 종가댁으로 올라온 그는 이기채 앞에 그 나무화병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말머리를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사람처럼
“속량을 하십시요.”
여쭈었다.
“없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략)군공(軍功)으로 노비가 양인이 된 일 또한 있고요.”
“그래, (중략)무슨 공이 있어서 노비 속량을 해? 너는 배운 것 많으니 이야기를 해 봐라.”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세상을 어제 오늘 겪은 것이 아니다.”
“내일은 더욱 달라질 것입니다.” 
이기채와 강호가 세대의 변동을 놓고 논쟁하는 장면이다. 신구 세대의 대립, 수구와 혁신 이념의 대립으로 볼 수 있는데, 새로운 가치에 대해 ‘벽력 같은 언사’로 화를 내는 이기채의 심산에는 전통적 가치가 전도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비롯된 묘한 상실감이 개재해 있다. 
최명희, {혼불} 8권,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