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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심과 결의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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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복이는 농막 귀퉁이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그 소리를 새긴다.
무섭게 내리치던 몽둥이와 장작이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켰지.
개 한 마리 잡는 것보다 더 처참하게 튀어 오르던 피.
이 피를 갚으리라.
그날, 쇠여울에 피 젖은 뒤꼭지, 헝클어진 머릿단이 생생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되살아나, 춘복이를 격렬하게 뒤흔든다.
그는 소름으로 온몸을 훑는 찬바람 속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원뜸의 지붕들을 노려본다. 이미 어둠이 깊어 지척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눈에는 불을 밝힌 것보다 더 훤히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조갑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오류골댁의 다소곳한 초가지붕은 더 잘 보인다.
내, 이 피를 갚으리라.
온몸의 힘줄이 땡기면서 주먹으로 모인다.
저절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이 힘줄을 땡기고 있는 것이다.
주먹은 돌멩이보다 더 단단해진다.
…(중략)…
그때, 춘복이는 쇠여울네의 통곡이 이기채의 고함을 잡아먹을 만큼 커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어금니를 맞문다.
그리고 지금. 이기채를 잡아먹은 통곡 소리가 성난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라온 마을을 뒤덮고, 강실이네 오류골댁 초가집을 한입에 삼켜 버리는 환각에 등을 부르르 떤다.
(쇠여울네. 인자 두고 보시요. 죽지 말고 살어서 두 눈 딱 뜨고, 꼭 보시요. 강실이가, 이놈 춘복이란 놈 자식 새끼를 낳고 마는 것을 뵈야 디릴 거잉게, 그날끄장은 죽지 마시요. 그거이 머 멫 천 년이나 남은 것도 아닝게, 쇠여울네, 어디로 가서 살든지 소식 끊지 말고 그날을 지달리고 있으시요. 쇠여울네가 울고 내가 울고, 거멍굴에 엎어진 인생들이 울고 울던 설움을 내가 모질게 갚어 줄 거잉게, 오늘 내가 내리친 장작에 어깨 찢어진 거, 너무 야속타 말으시요, 쇠여울네. 미안허요.)
춘복이의 번쩍이는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빛났다. 
쇠여울네가 덕석말이 당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춘복이의 마음에 더할 나위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처참하게 몽둥이질을 당하는 형국에 심한 모욕감과 절박한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쇠여울네의 한을 갚아주겠다고 단단히 결심하는 춘복이의 의지에 대한 묘사가 인상 깊은 대목이다.  
최명희, {혼불} 3권,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