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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행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신랑

노(怒)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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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모야, 할미한테 말해 보아라. 언제 가겠느냐?”
청암부인이 강모 앞으로 허리를 구부리며 물어 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눈매에 엄격한 서리가 서려 있다.
그 눈매의 서리 때문에, 사람들은 부인 앞에서 말할 때 보통은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멋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부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까닭 모르게 이쪽이 얼어붙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소가에서나, 호제, 하인, 비복들이나 과객이나 마찬가지로 그랬다. 그래도 비교적 양자 이기채는 그 깐깐한 성품답게 자기 할 말을 하는 편이었으며, 청암부인 또한 그런 그의 언행을 나무라지 않았다.
강모는 아직 연소한 탓도 있었으나 일찍부터 부인의 보살핌을 지극하게 받은 고로 할머니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청암부인의 심기가 지금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네의 심중 밑바닥에 고여 있던 어떤 힘이나 노여움이 솟구칠 때의 추상(秋霜) 같고도 뇌성(雷聲) 같은 기세를 강모는 잘 알고 있었다. 
묵신행을 하고 있는 효원을 데리러 강모가 재행을 가야하는데 재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고, 어른들은 강모가 하루빨리 대실에 다녀오기를 기대하는 데서 갈등이 생긴다. 청암부인과 어른들의 지시와는 달리 강모는 대실에 가기 싫으며 이 작은 갈등은 강모와 이씨종가의 운명에 하나의 씨앗으로 작용하게 된다. 강모는 재행을 서두르는 어른들 때문에 이씨종가와 효원에 대한 미움이 싹트게 되며 이후 관계 단절이 오는 요인이 된다. 
최명희, {혼불} 1권,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