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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야에 소박 당하는 신부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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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효원(曉源)은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다. 마치 만들어 깎아 놓은 사람 같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버스럭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안이 아주 어두운 것은 아니어서, 신방 앞마당 귀퉁이에 밝혀둔 장명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창호를 비추며 방안으로 스며들어 그네의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쉰다. 어금니가 맞물리면서 가슴이 막힌다. 그러면서 한삼 속의 주먹이 후두루루 떨리고 가슴 밑바닥에서 한기가 솟는다. 한기가 솟아오른다기보다는 몸 속의 기운이 차게 식으며 빠져 나간다고 하는 편이 옳을는지도 몰랐다.…(중략)…

온몸의 감각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몸의 마디마디를 죄고 있는 띠들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효원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대로 앉아서 죽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다. 그네는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그만큼 분한 심정에 사무쳤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이 자리에서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네가 나를 어찌 보고…….
이미 새벽을 맞이하는 대숲의 바람 소리가 술렁이며 어둠을 털어내고 있는데도 효원은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네는 어금니를 지그시 맞물면서 눈을 감는다. 
초야에 신부 효원은 남편 강모의 손길을 받지 못하여 혼례복조차 벗지 못한 채 소박 당하는 처지에 있다. 이에 가슴이 ‘얹혀’ 숨이 막히는 듯한 모욕감을 느낀다. 소박 당한 모욕감에 얹힌 가슴을 한숨으로 풀어 보려 하지만 어금니가 맞물리고 주먹이 떨리며 몸 속 깊이 한기가 서리는 분을 낸다. 온몸을 짓누르는 분은 이미 가슴 깊이 맺힌 한에 비견되는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 온몸을 짓누르는 분을 당장 풀 길은 막막하다. 게다가 쉬이 풀릴 분도 아니다. 소박 당한 마음은 이미 한에 비견되는 응어리로 잠재될 개연성이 크다. 화를 풀 수 없는 처지에서 효원은 분을 ‘삭일 뿐’이다. 
최명희, {혼불} 1권, 40,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