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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대왕과 문수동자

노(怒)
긍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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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꿈에 형수가 나타나 “에이 더러운 인간아, 부귀와 영화가 아무리 좋다 한들 어찌 감해 사람이 사람을 죽인단 말이냐?” 하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세조대왕의 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종기가 나 백약이 무효였다. 생각다 못한 세조는 금강산에 들어가 기도할 것을 마음먹었다.
세조가 단발령에 이르니 산색은 청정하여 마치 부처님 몸을 뵈옵는 것 같고 흐르는 내는 청정하여 마치 부처님의 범음성을 듣는 듯 했다. 환희와 선열에 정신을 잃은 세조대왕은 그대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될 것을 생각하였다. “여봐라, 거기 이발사를 데려 오너라. 내 머리를 깎고 이대로 중이나 되어야겠다.” 그때 신숙주가 있다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사오나 나라 일은 누가 수습하며 만조백관은 그 누가 거느립니까? 마음을 거두시어 그 마음으로 차라리 불사를 지음이 옳은가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 중은 되지 않겠으나 참회의 표시로 윗머리만 자르리라.” 하고 사방은 그대로 놓아두고 가운데 머리만 빡빡 깎았다. 그리고 일행은 그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 만폭동 마하연으로 가려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감히 죄인이 대승보살의 깨끗한 도량에 참례하려 하느냐? 너는 거기를 가지 못하리라.” “천만 사람이 다 갈 수 있는데 어찌 저만 홀로 못 간다 하옵니까?” “너는 조카를 죽긴 죄인, 다른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세조의 일행은 천학봉 아래 이르러 원통암을 찾았다. 세조대왕은 맑은 물에 목욕하고 일주일 기도하니 꿈에 비로소 마하연의 큰 길이 무지개처럼 나타나 보여 다음날 마하연을 참배하고 다시 양양 낙산사로 떠났다. 낙산사에서는 대종(大鐘)을 시주하고 오대산에 이르러 천일기도를 시작하였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오만 진신(眞身)이 유존(留存)하여 청정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상원사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매일 같이 오르내렸다.
어느 날 날씨가 무더워 더욱 몸 안의 종기가 불어터지는 것 같았다. 모든 시종들을 물리치고 홀로 시내에 들어가 더러운 부스럼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등에는 손이 닿지 않아 씻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어떤 동자가 길을 지나 가다가 “등을 문질러 드릴까요?” 하고 소리쳤다. 대왕은 깜짝 놀라며 동자를 바라보고 “마음이 있거든 이리 오너라.” 하였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오자마자 대왕의 손이 닿지 않아 씻지 못하고 있던 등을 어떻게나 시원스럽게 잘 문질러 주는지 금방 하늘에라도 날아갈 듯하였다. 대왕은 하도 고마워서 “내 오늘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 내일 사시(巳時)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자. 그리하면 내 너에게 깊은 보답을 하리라.” 하였다. 그랬더니 동자 가로되 “그런 것은 걱정 마십시오.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럼 애야, 너 혹 거리에 나가더라도 임금님의 등을 문질러 드렸다는 말은 하지마라.” “예 염려 마십시오. 그러나 대왕님께서는 개울에서 문수동자를 친견했다고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마십시오.” 하였다.
대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뒤를 돌아보니 머리를 두 가닥으로 딴 동자가 금방 나무사이로 사라지는데 찾아보아야 다시 볼 수 없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대왕은 너무나도 신기하여 그 영험한 문수동자를 붓으로 그려 모시게 하고 다시 그것을 조상(造像)으로 하여 모시게 하니 지금 오대산 상원사 큰방에 모신 문수동자가 그것이다. 세조대왕은 그날로 모든 병이 완쾌하고 다시는 도지지 않아 그 은혜를 보답코자 뒤에 본궁에 돌아와서는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서를 국역인출하고 원각사를 지었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황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주하였다. 몸에 종기를 얻은 세조는 치료를 위해 금강산에 들어가 불법에 경도되어 참회하였고, 문수동자의 도움으로 병이 치유된 세조는 보답으로 불사를 하였다.  
한정섭, {불교영험설화}, 법륜사,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