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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나라 공주와 청평사

노(怒)
긍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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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상종한지 10년, 내가 두어 번 너를 떼어 본 뒤로는 한 번도 너의 마음을 거슬려 본 일이 없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내가 좋아하는 절 구경을 하지 못하게 하느냐? 만일 싫거든 잠간만 여기에 떨어져 있거라. 그러면 내가 속히 절 구경을 하고 돌아와 너와 함께 가리라.”
뱀은 그 말을 듣고 곧 풀려 나와 넓은 바위 아래 또래를 틀고 앉았다. 10년 만에 처음 홀몸이 된 공주는 하늘을 나는 듯 마음이 기뻤다. 영천에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씻고 절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밥 때가 되어 스님들은 다 큰방에 모여 있는데 가사불사를 하던 방에는 아름다운 비단 조각이 바늘과 함께 널려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본 금침(錦針)이라 공주는 왈칵 눈물을 흘리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비단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바늘로 몇 담을 떴다. 그때 스님들이 나와 호통을 쳤다. “어디서 빌어먹는 여자가 들어와 신성한 가사불사를 망쳐놓는담.” 하고 스님들은 노발대발 여간 나무라지 않았다.
공주가 꾸중을 듣고 절문을 나와 다시 개천을 건너려하는데 뜻밖에 비와 바람이 몰아치며 뇌성벽력이 내려쳤다. 천왕문 어귀에 의지하여 그 비와 바람을 피하고 간신히 물을 건너 뱀과 약속한 자리에 이르니 신기하게도 그 뱀은 벼락에 맞아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다. 어찌나 즐거운지 이 거지 여자는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 청평사 부처님께 천배 백배 절을 하였다. “오로지 이것은 부처님의 영험하신 신통력에 의하고 스님들의 입는 무상복전의(無上福田衣)를 만진 큰 공덕으로 아나이다. 아무쪼록 이 은혜에 보답토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고 다시 절 안으로 들어가 주지 스님을 뵙고 “이 절에 종노릇이라도 하고 싶으니 스님께서는 자비로 허락하여 주십시오.” 사정하였다. 그러나 처음은 완강히 거부하던 스님도 그의 말, 행색 등을 낱낱이 뜯어보더니 이는 필시 보통 여자가 아니리라 간주하고 쾌히 승낙하였다. 그래 그는 그 절에서 밥도 짓고 찬도 만들고 또 밭에 나가 김도 매었다.
하루는 대중스님들이 가사불사를 마치고 공사를 하는데 서로 화주를 맡지 않으려 하였다. 공사의 명목은 퇴락된 큰 법당을 중수하는 일이었다. 후원에서 듣고 있던 공주는 단정히 옷깃을 여미고 들어갔다. “그 화주는 제가 맡겠습니다. 비록 소녀 미약하오나 부처님의 은혜가 지중하므로 이 불사는 소녀가 홀로 맡아 하겠습니다.” 하고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 하였다. 공주는 떨리는 손끝으로 춘천부사와 강원감사에게 각각 한통씩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곧 전했다. 이 편지가 닫자마자 춘천부사와 강원감사가 일족준마로 달려와 “공주마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공주님이 내국(來國)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던 참인데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하고 곧 조정에 알려 절 고칠 돈과 미곡 노역을 나라에서 맡아 새 절을 지으니 이것이 현재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청평리에 있는 청평사인 것이다. 
거지 행색의 여자가 절 방에 몰래 들어가 가사불사를 위해 짓고 있던 가사에 바느질을 하였다. 그것을 본 스님들은 신성한 가사불사를 망친다는 이유로 노여워하며 그 여자를 절에서 쫓아내었다. 그녀는 영험한 가사를 만진 일로 자신을 괴롭히던 뱀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절 일을 도우며 머무르기를 원하였다. 스님들은 그녀의 범상함에 이끌려 승낙하였다. 법당 중수의 화주를 자처하고 나선 여자의 행적을 통해 그녀가 원나라 공주임이 밝혀지고, 그녀의 덕에 청평사가 건립되었다는 청평사 건립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정섭, {불교영험설화}, 법륜사, 1975. 
{韓國寺刹史料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