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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원사 스님과 머슴

노(怒)
긍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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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중기에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深遠寺)의 스님은 퇴락한 법당을 중수하기 위해 천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마지막 날에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이 현몽해서는 불사에 대한 방법을 계시하였다. 곧 화주책을 만들어 아침에 고을로 내려가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의 계시대로 화주책을 만들어 들고 하산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무쪼록 공덕심이 있어서 법당이 새롭게 단장될 수 있기를 축원하였다.
그때 한 사람이 오는데 자세히 보니 고을의 대감집에 사는 떠꺼머리 머슴이었다. 스님은 마음 속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여 실망하다가 어젯밤 꿈이 하도 생생한 지라 머슴이지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화주책을 건네주고 돌아왔다. 스님은 책을 주고 절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한편 화주책을 건네받은 머슴은 신세가 박복하여 가진 것이 없어 불사에 참여하지 못함을 고민하다가 장가갈 때 받아가기로 하고 수십 년 동안 모아놓은 새경을 일시에 받아서 심원사에 시주하였다. 그리고 장가가기를 포기하고 머슴살이를 계속하였다. 머슴의 선행은 고을에 널리 퍼져나갔다. 고을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도 머슴을 위해 불상 앞에서 늘상 기도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머슴이 일하다가 실족하여 하반신이 불구가 되었다. 대감 집에서는 일을 하지 못하는 머슴을 쫓아내었다. 스님은 난처한 지경에 빠진 머슴을 절로 데려왔다. 그러자 고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님마저도 부처님의 인과법문과 기도의 위신력에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절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지내던 머슴이 이번에는 중풍에 걸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생명처럼 소중한 재산을 시주한 착한 사람을 위해 스님이 조석으로 기도를 아끼지 않았건만 돌아온 것이 이러한 불행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부처님의 인연법이나 가피력을 믿지 않았고 절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또 얼마 되지 않아 머슴이 범에게 잡아먹히고는 머리통만 길바닥에 뒹굴었다. 박복해도 이렇게 박복할 수 있을까?
스님은 도끼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 아무런 영험도 없는 불상의 이마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치려고 도끼를 빼려고 하니 빠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스님은 박복한 총각의 머리통을 거두어 묻어주고 그대로 절을 떠났다.
그러한 소문을 들은 고을 사람들이 절로 올라와 도끼를 빼려고 하였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에 흐르기를 30여년!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군수가 심원사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보고받고는 마음이 일어 절을 찾아갔다. 군수가 자세히 보니 도끼 끝에 이런 글씨가 씌어 있었다.
“불사(佛事)로 삼생(三生)의 인과를 한꺼번에 벗은 자가 이 도끼를 빼리라”
군수는 불상에 박힌 도끼를 잡아 뽑아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잡아당기니 도끼가 스르르 쉽게 빠지는 것이 아닌가! 군수는 물론이기 고을 사람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생(生)은 머슴으로, 또 한 생은 불구자로, 그리고 또 한 생은 중풍으로 누워서 살다가 마침내는 호환(虎患)으로 생을 마쳐야 할, 기나긴 세월의 업장(業障)이 두터운 불심으로 인하여 단 삼년 만에 소멸되고, 이제 그 머슴이 군수로 전생하여 금의환향한 것이다. 
머슴이 심원사 불사를 위해 남다른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곤궁에 처하고 결국 호환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승려가 인과응보와 부처의 영험에 대해 회의하며 분개의 표출로 불상을 훼손하였다. 그러자 업장이 소멸되어 머슴이 군수로 환생하였다. 그리고 군수에 의해 훼손된 불상이 비로소 복원되었다. 즉, 이 이야기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현생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누대에 걸쳐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의숙 편저, {우리 불교 설화}, 북스힐, 2003년. 
원철 외 편, {(월간)海印}, 해인사, 200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