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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판화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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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광주의 미술인들은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인식하고 변혁을 위한 미술투쟁으로 구체화시켰다. 강연균, 홍성담, 나상옥, 김경주 등 5월을 직접 겪은 광주의 미술가들이나, 광주의 소식을 전해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가들에 의해 투쟁의 과정과 역사적 의미들이 여러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토미야마 타에코, <학살>, 1980년 1980년 광주의 진실은 국내보다도 외신기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먼저 퍼져 나갔다. 광주의 소식을 접한 일본인 작가 토미야마 타에코(富山 妙子)는 곧바로 이 사건을 세계에 호소하고자 ‘스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판화작품을 제작하였다. 작품 <독재자>에서부터 <계엄군>과 <죽은 자>, 그리고 <학살> 등으로 그들의 만행을 알렸다. 그의 작품은 과감하게 생략하여 단순하게 표현하면서도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광주의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슬라이드로 만든 영화 <자유광주>(환등사)가 그해 7월경부터 미국 유럽 등지로 보내짐으로써 광주의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홍성담, <오월-01-마각>, 1986년 1983년부터 홍성담은 일련의 목판화작품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담아내어 이후 전개되는 판화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홍성담을 중심으로 1979년에 결성된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와 여기에서 운영된 광주시민미술학교의 판화교실에서는 5‧18이후 광주시민의 삶과 정서가 가감 없이 형상화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 홍성담은 미국을 등에 업고 광주를 총칼로 공격한 군부를 비판하는 <마각>을 시작으로 오월의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에서 오월의 힘을 통일로 이어가자는 의미의 <깃발춤>까지 50여점의 5월연작을 제작하였다. 홍성담의 판화는 굵고 간결한 선으로 단순화한 인물묘사와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어 새긴 배경 처리 등으로 주제의 선명성을 더해준다. 홍성담, <오월-06-혈루-02>, 1981년 그중 특히 총 6점으로 된 <혈루> 연작은 곤봉으로 내리치는 군인과 불가항력으로 당하는 젊은이, 흠씬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학생, 임산부의 죽음, 한 없이 실려 가는 주검들까지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했던 군부의 만행을 담고 있다. 권력을 등에 업고 자국민을 살상하는 군부세력,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서로 다른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죽고 죽이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모습이다. 홍성담, <오월-24-불>, 1988년 10일간의 항쟁 기간 중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은 언론의 배신 때문이었다. 게엄군의 만행은 감추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였으며,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한 시위를 몇몇 불순분자의 난동으로 보도한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광주 MBC건물의 방화로 표출되었다. 홍성담의 <오월-24-불>은 당시의 화재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성난 군중의 함성과 함께 화염이 넘실대고 있다.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를 대표하여 홍성담은 1980년 7월 남평 드들강에서 열렸던 5월 영령을 위한 진혼굿 형식의 야외작품전에서 발표한 선언문 <미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하여>에서 “작품의 내용은 현실접근의 증언과 발언이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광주 5월을 낱낱이 목판에 새겼고, 판화운동을 통해 그러한 의식을 시민들과 공유하였다. 홍성담과 함께 시민미술학교를 이끌어갔던 김경주, 조진호 등 동료, 후배들의 목판화 활동은 그때까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광주‧전남의 판화운동 활성화에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5월시 판화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 <<5월시 판화집-빼앗길 수 없는 노래>> 등으로 출간되었고, 달력으로 제작되거나 대학신문, 교지, 팜플렛 등의 삽도, 깃발 그림 등에 활용되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박주영, <아들의 총>, 1989년 1989년 광주미술인공동체가 창립되었고, 5월을 기억하고 알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제작되었다. 창립기념 ‘5월전’에 전시된 박주영의 <아들의 총>은 광주민중항쟁으로 아들을 잃은 늙은 아버지의 분노를 새겼다. 아들의 총을 대신 잡고 어딘 가를 노려보고 있는 늙은 아버지는 총을 들 힘도 없을 것 같은 노구이지만 원수를 갚겠다는 의지만은 다잡은 두 손과 목표물을 바라보는 눈빛에 살아있다. 바탕에 붉은 색을 깔아 총구에서 피어나는 화염에 실제감을 준 것은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사범, <아들의 낫을 가는 아버지>, 1989년 <아들의 총>과 유사한 소재가 이사범의 유화작품 <아들의 낫을 가는 아버지>에서도 다뤄졌다. 한복을 입고 숫돌에 낫을 갈고 있는 완고한 표정의 아버지는 여느 시골의 늙은 아버지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망월동 묘역에서 딸의 영정을 놓고 통곡하는 어머니와 해원 춤을 추는 여인의 춤사위, 쓰레기 더미 속에 얼핏 보이는 찢어진 성조기 조각이 있는 배경은 갈고 있는 낫이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시퍼렇게 선 낫 날 만큼이나 아버지의 눈빛도 섬뜩하기까지 하다. 문학작가들이 비명을 지르듯 외마디 시어로써 참상을 고발하려 했던 것처럼 80년대 전반기 작품들은 화가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사태의 진상을 알리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때문에 같은 주제를 다룬 후반기 작품에 비해 사실성과 함께 강한 분노가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토미야마 타에코나 홍성담의 작품을 비롯한 이 시기 판화작품들은 판화가 갖는 대량생산의 이점과 함께 흑백의 간결한 선으로 처리된 단순화된 선의 강한 울림으로 할 말 많은 이 시기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이선옥, <분노의 화폭>,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32-136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3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