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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들의 사라짐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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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가 갖고 있는 기계적임에서 안정을 찾았”던 ‘을’이 사랑한 언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을은 풀리지 않는 기호와 오래된 신호 같은 것을 사랑했다. (…) 을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동사의 변화나 다른 뜻을 일곱 개쯤 가지고 있는 같은 발음의 단어였다. 소통의 매개가 아니라 기호의 등가물이 되는 것들을 을은 사랑했던 것이다.(박솔뫼, <<을>>) “공장 지대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매연이 뒤덮인 하늘과 수상한 기름 냄새를 맡고 “묵직한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자란 ‘을’이 흥미를 지닌 언어는 “동사의 변화나 다른 뜻을 일곱 개쯤 가지고 있는 같은 발음의 단어”다. 그것은 단조로운 “기계음”과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언어일 것이다. ‘을’이 사랑한 언어와 같이, 만남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어떤 순간으로 현상된다. 세 사람의 만남은 세 점에서 한 점이 빠져 나가거나, 두 점 사이에 한 점이 들어와 세 점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계음처럼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사랑의 문자는 오직 침묵과 흔적으로만 현현된다. 사랑은 ‘적당한 말’을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말’을 찾는 것이다. “이 말들을 사라지게 할 말 스스로 반을 접고 또 다시 반을 접고 마지막으로 반을 접고 또 접어 사라지게 만들 말을 생각했다.” 적당한 말들이 서로 자살이든 타살이든 간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을 본다. 사랑은 ‘적당한 말’이 죽고 ‘오염되지 않은 말’을 찾기 위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오염된 말로부터 나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을 하고 목소리는 반복해서 말하고.(박솔뫼, <부산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사랑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쓰고, 결국 사라지기 위해 쓴다. 사랑의 문자가 거주한 곳은 “공장 지대의 한가운데, 어느 언어의 세계도 아닌 어둠의 한가운데,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곳. 아마 그럴 것이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곳. 바로 그곳일 것이다.”(<<을>>) 그곳은 “백 행”일 것이다. “백 행은 사라진 어떤 것. ‘어느 순간 홀연히’는 아니고 차차 모두가 잊게 된 어떤 것이다.” 먼 곳에서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글자들이 모였다 사라진다. 죽음 후에야 이름을 찾는 사람들, 사는 동안 줄곧 없는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 (박솔뫼, <<백 행을 쓰고 싶다>>)  
 
한순미, <어두운 시대를 향한 반란>, <<우리 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25-126쪽.  
최유준 외저, <<우리 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12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