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일베는 자신들의 반사회적 행위를 놀이와 재미의 일종으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짙다. 우선 그들은 양심이나 도덕의 기초가 되는 초자아를 연상케 하는 것이라면 모조리 거부한다. 해서 진정성의 기미가 보이는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공격의 대상이다. 예컨대 여성주의라든가 민주주의 혹은 인권과 같은 담론은 그들 용어로 하면 그야말로 ‘선비질’에 불과하다. 그 담론들이 진보의 낌새를 풍기고 있어서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다른 말로 그들이 보수우파여서 꺼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재미 찾기에 제동을 걸기 때문에 극도로 싫어하는 것뿐이다.
그 수위에 아무런 제약 없이 증오 표현을 적들에게 퍼부어 대는 것만이 그들에게 유일한 재미이자 오락거리인 셈이다. 사회적 관계성이라거나 타인에 대한 윤리적 관심 따위는 이 재미 앞에서 모두 무화될 수밖에 없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만에 하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이들이 몰입하는 사디즘적 유희에 이끌리고 혹여 거기에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경험했다면, 스스로 파시스트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파시즘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그 전제 격으로 라이히는 사람들의 인성 구조를 세 개의 층으로 구획해 놓은 바 있다. 우선 인성의 표면층이 있다. 이 층에서 인간은 수줍어하고, 예의 바르며, 인정이 많고, 책임감이 있으며 양심적이다. 다음 두 번째 층 곧 중간 성격층이 있는데, 잔혹하고, 가학적이며, 음란하고, 욕심과 시기가 많으며 철저히 충동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 층에서 궁극적으로 표면층이 태어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숙이 있는 세 번째 층, 심층의 자연스러운 사회성이라는 층이 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파시즘의 핵심이 “본질적으로 표면층이나 심층이 아니라 이차적 욕구를 갖는 두 번째 층의 성격을 구현”(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파시즘의 대중심리>>)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라이히 식으로 말하자면, 이차적 욕구에 몰두하는 일베의 반역적 정서가 반동적 사회사상이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결국 파시즘의 형태로 현실화되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