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천성이 효성과 우애를 중히 여겨서 항상 어버이를 위하여 외직을 원하여, 7, 8차례나 지방관이 되어 봉양을 극진히 하였다. 양친이 집에 계실 때에 자손이 앞에 가득한데 채색 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서 화락하게 하고, 세월이 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섬기는 정성에 시종 변함이 없었다. 예안 고을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일찍이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서 어버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고, 그가 안동에 있을 때에는 노인들을 봉양하는 잔치를 크게 베풀고, 양친을 모시어 안팎 연회의 주인으로 삼아, 공이 자제의 예로 축수하는 잔을 받들어 올려 그 화락한 경사를 지극히 하니, 보는 자가 다 탄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고금에 드문 일이라 하였다.”
퇴계 이황이 기록하고 있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행장이다. 이현보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벼슬도 사직할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