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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연이 사라진 사회

애(愛)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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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아니 에르노, 최정수 옮김,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집을 들락거리고,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고, 이미 자신을 버린 상대방에게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수없이 수화기를 놓았다 들었다 하고, 그가 보낸 모든 선물과 편지를 비장하게 내버리려 했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다시 싸안고 집으로 들어오고. 누군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 그 사람이 곁에 없어도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생활패턴을 버리지 못하는 것. 이것은 실연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어떤 사람이 쓸데없는 행동에 기이한 집착을 보인다든지, 필요이상으로 예민해져 주위사람을 괴롭히는 순간에도, ‘저 사람 실연당했어!’라고 누군가 귀띔을 해주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의 기행奇行을 이해해주었다. 실연은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간마저도 조용히 멈추게 하는 공동체적 마력을 지닌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촌스러운 실연의 행태들’은 점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대들 사이에서는 ‘실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실연의 상처에 빠져 망연자실하기보다는 예쁜 옷이나 신발을 사고, 피부 관리를 하거나 성형수술을 하고, 다시 자신을 멋지게 ‘리모델링’하여 데이트시장에 스스로를 전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상처 극복법이라는 것을 젊은 세대들은 깨우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효율성인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연의 상처로 무참하게 짓밟힌 마음으로 ‘데이트’를 다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진짜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간의 ‘의식’은 거부해도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실연의 아픔은 물론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애도가 사라져버린 시대적 분위기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도 크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통해 ‘헤어진 연인의 근황’까지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여울, <사랑의 빈곤, 연애의 풍요를 넘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40-141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4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