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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풍속도의 변화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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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에게서 화살을 빼앗았다고 믿는 현대인들은 과연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 예전보다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더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의 감정이 중요하던 시절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연애편지가 사랑을 전하는 최고의 미디어였다. 내가 지금 쓰는 이 편지가 언젠가 사랑하는 이의 가슴 속에 전달된다는 생각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글을 쓰는 행위. 연애편지로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 자체에 숭고한 가치부여를 하는 사고방식 속에서는 사랑이 ‘진도’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진실한 문장으로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며, 연애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비이성적이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사로잡힘’의 문제가 된다. 2000년대 이후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연애에서는 ‘사로잡힘’, ‘사랑에 빠짐’ 같은 감정의 상태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디테일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너무 쉽게, 예전에는 차마 궁금해도 물어보지 못하던 ‘바로 그것’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곤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랑 잤어?” “그래서, 어땠는데? 자세히 이야기해봐.” 이런 식의 노골적인 질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하는 사회에서는 사랑의 ‘이루어짐’에 대한 서사가 아니라 (이 서사에서는 ‘공감’이 최고의 코드다) 연애의 ‘목표 달성’에 대한 서사(이 서사에서는 ‘효율성’이 최고의 코드다)가 더욱 중요해진다. 사랑조차 경영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비이성적이고 낭만적인 사로잡힘의 세계에서 계산하고 분석하고 저울질하는 효율적 세계로의 이동. 에로스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들어 더 이상 사랑의 화살을 쏘지 않게 되었고, 사랑의 묘약으로 통칭되던 온갖 신비로운 주술들은 이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 사랑의 밀어나 건넬 수 없는 말들의 풍경보다는 오고 가는 ‘재화’의 퀄리티가 중요하게 되었다. 상대방과 어떤 커플링을 나눴는지, 서로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는지, 결혼할 때는 어떤 혼수와 어떤 집을 마련해 가는지가 이 세속적 연애지상주의의 종착역이 되어간다. 이 글은 2000년대의 로맨스 영화들을 중심으로 ‘세속화되어가는 연애’와 ‘소외되어가는 사랑의 감정’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 시대 사랑의 풍속도가 영화의 서사 속에서 어떻게 압축되고 상징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한국인에게 사랑이란, 연애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정여울, <사랑의 빈곤, 연애의 풍요를 넘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25-126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2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