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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가던 날 이화우 흩날리고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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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조는 매창의 「이화우 흩뿌릴 제」이다. 매창의 본명은 향금香今이었는데, 기생이 된 후로 ‘계랑桂娘’으로 바꾸고 호를 ‘매창梅窓’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만종은 저서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송도의 진랑眞娘(황진이)과 부안의 계생桂生(매창)은 그 사조詞藻가 문사들과 비교하여 서로 견줄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며 매창을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名妓로 평가한 바 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이 시조는 사랑하다 이별한 연인들 사이에서의 그리움을 절절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매창이 이렇게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다. 유희경은 서자로 태어났지만, 충과 효로 명성이 높았고 <<주자가례>>를 배운 이후로는 예학에 이름이 높아서 따로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름이 있던 이로, 여행 중 부안에서 매창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둘은 나이 차이와 신분 차이가 있었고, 유희경은 이미 가정이 있는 중년의 사내여서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의병으로도 나섰던 유희경인지라 둘의 만남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당대인들이 평가할 만큼 지극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매창은 허균과의 우정으로도 유명한데, 매창이 죽자 허균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오래 사귀었으나 몸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녀는 음란함을 즐기지 않았고, 나는 난잡함에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제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나니 나는 슬픈 눈물로 그대를 전송한다. 꽃다운 넋은 고이 잠들라.”는 글이 그것이다. 매창의 시조 또한 앞서 홍랑의 경우처럼, 앞에서 살폈던 전별의 자리에서 불렀던 관념화된 사랑노래와는 달리 상대방의 답시들도 함께 전한다. 유희경 역시 매창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을 다음과 같은 답시로 남겼던 것이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娘家在浪州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我家住京口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相思不相見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제 애만 끓누나. 腸斷梧桐雨 결국 “최경창을 두고 노래한 홍랑의 시조와 유희경을 두고 노래한 매창의 시조에 토로된 절절하고 지순한 사랑의 정념은 기녀적 감성의 세계를 이미 뛰어넘은 인간적 사랑의 진실성이 깃들어 있다. 일회적 사랑의 양식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이 역시 일방적 사랑이 아닌 쌍방적 사랑의 감성에 기반 둔 상사의 노래”(성기옥, 「기녀시조의 감성특성과 시조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녀적 감성 세계’란 유교적 이데올로기 안에 갇힌 ‘만들어진 감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안에서 기녀의 존재란 남성들의 부속물에 불과하였고, 그 상황에서의 감성 또한 제한되거나 혹은 포장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태성, <거짓사랑과 참사랑의 경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81-183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8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