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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혹은 보이는 이미지로서의 기녀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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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이미지로서의 기녀를 살피는 일은 그런 이미지에 투영된 이념과 그로부터 비롯할 수밖에 없는 인위적 감성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기녀에게는 언제나 두 개의 시선이 존재했다. ‘보는’ 시선과 ‘보이는’ 시선이 그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보이는’ 기녀로서의 이미지와 그런 이미지를 향유하는 즉, ‘보는’ 남성의 시선이 구축하는, 그리하여 이 두 개의 시선이 서로 나선적 관계망을 형성함으로써 위장된 또 다른 ‘감정 이미지’를 생산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는’과 ‘보이는’이라는 두 개의 시선은 어쩌면 사회적으로는 하나의 시선일 지도 모른다. ‘보이는’ 이미지로서의 기녀 자신의 시선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대 ‘보이는’ 기녀의 이미지는 지역마다 달랐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들의 ‘보는’ 시선 아래 만들어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안동의 기녀들은 주세붕 같은 유학자의 영향을 받아 <<대학>>을 잘 외웠고, 관동의 기녀들은 송강 정철의 영향을 받아 「관동별곡」이나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잘 불렀다고 한다. 함흥의 기녀들은 그 지역이 국경의 요새였던 터라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잘 외웠고, 영흥의 기녀들은 이성계의 영향으로 「용비어천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신윤복, <검무> (간송미술관 소장) 또한 제주 기녀는 몽고의 영향으로 말 타는 재주가 있었고, 의주나 북청의 기녀는 국경 수비대의 영향으로 검무를 잘 추었으며, 평양의 기녀는 석북 신광수의 영향으로 관산융마關山戎馬를 잘 불렀다(심영구, <<조선기생이야기>>)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면 당대 기녀들이 잘 외우고 잘 부르며, 잘 추어야 했던 기예의 영역은 모두 남성 혹은 남성적이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전근대 사대부 남성들이 기녀들에게 요구했던 항목만을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명기의 조건’이라는 명목 아래 기녀들에게 12능十二能과 5수五守를 함께 갖출 것을 요구했다. 단순히 미인이라고 해서 모두 명기가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12능은 삼예三藝, 삼기三技, 삼서三書 그리고 삼살三殺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삼살三殺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5수를 함께 두었던 것이다. 삼예란 시서화詩書畵, 삼기란 창금무唱琴舞, 그리고 삼서는 소학小學, 논어論語, 여사교女四敎를 말한다. 더불어 삼살은 소살笑殺, 요살妖殺, 방살放殺을 말한다.  
 
조태성, <거짓사랑과 참사랑의 경계>,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68-170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6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