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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조와 비류

욕(欲)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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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朱蒙在北扶餘所生子來爲太子, 沸流溫祚恐爲太子所不容, 遂與烏干馬黎等十臣南行, 百姓從之者多,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濱, 十臣諫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高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宜乎,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溫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是前漢成帝鴻嘉三年也, 沸流以弥鄒土濕水鹹, 不得安居, 歸見慰禮, 都邑鼎定, 人民安泰, 遂慙悔而死, 其臣民皆歸於慰禮 
주몽이 북부여에 있었을 때 낳은 아들이 찾아와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마침내 오간, 마려 등 열 명의 신화와 더불어 남쪽으로 떠나가자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드디어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가히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하였으나 열 명의 신하가 간하기를, "생각건대 이 하남의 땅은 북은 한수를 띠고 동은 높은 산을 의지하엿으며, 남은 비옥한 들이 보이고 서로는 큰 바다로 막혀 있으니, 그 천험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인지라 여기에 도읍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하였다.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 보필하게 하고 국호를 십제라 하니 이 때가 전한 성제의 홍가 3년이었다. 비류는 미추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하게 거처할 수 없었으므로 돌아와 위례를 보았는데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한지라 참회하여 죽으니 그 백성과 신하가 모두 위례에 돌아왔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즉위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