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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2 - 유하

욕(欲)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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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나날,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오르넬라 무티, 린제이 와그너, 엘리다 벨리.... 세운상가 다리 위에서 이방의 여배우 이름이나 뇌까리는 것, 세운상가,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 내 세포들의 상점을 가득 채운 건 트레이시와 치치올리나, 제니시스, 허슬러, 그리고 각종 일제 전자 제품들, 세운상가는 복제된 수만의 나를 먹어치웠고 내 욕망의 허기가 세운상가를 번창시켰다 후미진 다락방마다 돌아가던 8미리 에로티카 문화영화 포르노의 세상이 내 사랑을 잠식했다 여선생의 스커트 밑을 집요하게 비추던 손거울과 은하여관 2층 창문에 매달려 내면의 음란을 훔쳐보던 거울의 포로인 나, 오 그녀는 나의 똥구멍 가끔은 서양판 변강쇠 존 홈스가 나의 귀두에 다마를 박으라고 권했다 금발 여배우의 매혹이 부풀린 영화 감독이라는 욕망, 진실은 없었다, 오직 후끼된 진실만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뿐 네가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줄 거야 환한 불빛으로 세운상가는 서 있고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다가간다 잡힐 듯 달아나는 마음 사막 저편의 신기루를 향하여, 내 몸의 내부, 어두운 욕망의 벌집이 웅웅댄다 그렇게 끝없이 웅웅대다가 죽음을 맞으리라 파열되는 눈동자, 충동의 벌떼들이 떠나가고 비로소 욕망의 거울은 나를 놓아줄 것이다  
시적화자는 ‘세운상가’라는 공간에서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욕망’할 수 있다. 그것이 ‘금지’된 ‘포르노’로 상징되는 성적 욕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세운상가에서 솟아나는 ‘욕망’은 자신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후끼된 진실’이라는 말처럼 ‘세운상가’가 나의 ‘욕망’을 잠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운상가’는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적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세운상가’가 만들어낸 ‘욕망’을 ‘욕망’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그런 점에서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강정구, <유하 시에 나타난 욕망의 문제>, <<국제한인문학회>> 제13집, 국제한인문학연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