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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혈을 재우며 - 박정만

오(惡)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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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혈을 풀기 위해 한약 한 제를 지어 왔다. 코 위에 안경을 걸친 한약방 주인이 물에다 끓이지 말고 막걸리를 부어 끓이라 한다. 술 먹고 대한민국처럼 망가진 내 몸뚱이의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참 용타고 생각하며 아내는 탕기에 술을 넣어 약을 달인다. 펄펄 끓는 물솥에 수건을 적셔 내 몸의 어혈 위에 찜질도 하고…… 탕기에선 한밤내 부글부글 죽음이 들끓는 소리. 절명하라, 절명하라, 절명하라, 이를 갈다 이를 갈다 가슴도 부글부글 소리를 내고…… 분노도 피딱지도 약에 녹아 하나가 되고…… 어혈은 풀어져서 내 몸의 피와 살과 뼈에 스미고…….  
위 시를 쓴 시인 박정만은 실제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3일간의 고문으로 몸이 망가진 그는 마누라가 달여온 한약을 마시며 초고에 가깝게 위의 시 <어혈을 재우며>를 쓰게된다. 치욕과 분노가 어혈에 녹아내리길 바라고 있지만, 피와 살 그리고 뼈에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들에 대한 원망이 스며들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느껴지는 ‘부정적’인 상황이다.  
박정만, 고찬규 엮, <<박정만 시전집>>, 해토, 2005.  
김기용, <누가 시인을 죽였는가, 박정만>, KBS미디어,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