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그의 시에서 현재와 미래를 말하지 결코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대개 과거로부터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허무감의 페이소스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하였고, 현상과 본질의 대립, 부분과 전체의 부조화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이 시는 이상의 <시제이호>라는 시로, 이 시에서 ‘아버지’라는 시어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게 읽혀질 수 있다. 시간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것은 이미 지나간 시대일 수 있으며, 권위적인 기성의 것일 수 있다. 단순하게 과거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적 주체는 ‘아버지’라는 시어가 포괄하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잠시만이라도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어느 사이에 ‘아버지’로 표상되는 것들의 요구로부터 포로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벗어나길 욕망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시적 주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성적인 것의 거부이며, 기성적인 것을 따르도록 요구하는 인습과 제도에 대한 제도에 대한 반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