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로맨스는 공적 영역에서의 소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내가 여기서 특히 근대 로맨스 정치경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여기서 구성된 로맨스 욕망이 아직도 우리의 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편으로 냉혹한 자본주의 원리에 따르지만 다른 한편 여전히 로맨스를 열망한다. 물론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를 지나 후기자본주의로 접어든 시대를 살고 있다.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후기 자본주의 도시에서 근대 도시의 이분법은 다소 느슨해진 경향을 보인다. 마사지, 가사 도우미 등 사적 친밀성과 관련된 여성의 노동은 낙인 없이 시장의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인격이나 정서와 관련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여겨졌던 시장에서는 서비스 노동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반대로 인격적인 관계를 핵심으로 했던 사랑 관계에 소비와 쾌락의 논리가 들어오기도 한다. 연인들 간의 데이트는 자기 계발, 문화생활, 레저 등을 위한 소비를 필요로 하게 되고, 애인 관계에서는 인격만큼이나 쾌락 생산을 위한 성 생활이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는 이제 소비 없는 로맨스를 상상하기 힘들다. 로맨스는 상품화되었고, 상품은 로맨스가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소비 없는 로맨스나 로맨스 없는 소비는 매력을 잃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로맨스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이들은 강렬하고 순수한 로맨스를 욕망한다. 뻔하고 흔한 텔레비전 드라마들을 떠올려 보라. 여기의 주인공들은 로맨스를 통해 자유로운 인격을 실현하고자 하며, 이런 맥락에서 생산/재생산, 처녀/창녀의 이분법을 고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소비와 뒤엉킨 후기 자본주의 로맨스가 순수한 인격적 관계일 수 없다고 천명한다. 이들은 인간관계가 이분법적으로 뚜렷이 구분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들은 오히려 혼종적 욕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근대 로맨스 정치경제를 완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사랑 방식을 창출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물론 다른 지면을 빌어 논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로맨스 정치경제학을 위한 시론: 근대 자본주의 도시와 낭만적 사랑의 욕망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제19권(한국여성철학회, 2013, 35~58쪽)을 쉽게 풀이하는 방향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현재, <로맨스 정치경제학>,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223-224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22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