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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종말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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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 속 주인공 못지 않은 열렬한 로맨스를 불태웠던 남녀가 오랜 결혼 생활 후에 서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경우. 이 영화는 그렇게 ‘사랑의 시작’이 아닌 ‘사랑의 종말’처럼 보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담배를 ‘시원하게 피우고 싶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기벽을 가진 아내, 오렌지주스와 녹즙을 만들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마시면서 싸라’고 요구하는 아내, 신문배달원에게 ‘신문을 넣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존심도 내던지고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아내 연정인(임수정). 시집을 펼치고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는 남편에게 억지로 녹즙을 꾸역꾸역 먹이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인의 대사는 그녀의 캐릭터를 단번에 드러낸다. “싸면서 시집 읽는 거 보다 싸면서 마시는 게 덜 이상해, 싸면서 시집 읽는 거 좀 위선적이지 않아? 차라리 먹으면서 싸는 게 인간적이지?” 단 일분도 ‘혼자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 아내를 향한 남편 두현(이선균)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아내의 기에 짓눌린 그는 아내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꿈꾸며 지방 근무를 자청하게 된다. 하지만 근무지를 지방으로 옮겨도 스토커처럼 몰래 따라온 아내의 집착을 견디다 못한 두현은 급기야 옆집에 사는 전설적인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포즈로 정인의 눈길을 끌려던 장성기에게 정인은 ‘기대했던 연민’이 아닌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자살을 꿈꾸는 남자를 경찰서에 신고해버린 정인의 엉뚱한 행동에 산전수전 다 겪은 장성기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정인의 코믹하면서도 주도면밀한 논리는 오히려 장성기의 관심을 끌게 된다. “아저씨가 떨어진 거 누가 치워요? 불법 쓰레기 투기! 그걸 본 사람들은요? 풍기문란! 아저씨 가족들은요? 명예훼손!” 남편 두현의 비밀스런 주선으로 지방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 정인은 ‘방송에서는 대부분 꺼리는 부정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뜻하지 않게 점점 인기를 얻게 된다.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정인의 도발적인 방송은 ‘예의바르고, 올바르고, 모두의 평균적인 입맛에 걸맞은 안전한 언어’가 아닌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럽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가시가 돋힌 언어’로 오히려 청취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게 된다. 얌전하지는 않지만 더없이 솔직하고, 우아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도발적인 정인에게 진심으로 매력을 느낀 장성기는 점점 정인의 숨길 수 없는 진심을 깨닫게 된다. 남편 두현의 돈을 받고 정인을 유혹하면서도 장성기는 정인의 고달픈 속내를 서서히 알게 된다. 그는 카사노바를 ‘연기’했지만 정인을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심 어린 ‘순정남’이 되어버리고 만다. 
 
정여울, <사랑의 빈곤, 연애의 풍요를 넘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36-138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3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