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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프로포즈

애(愛)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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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매년 신춘문예에 문을 두드리며 작가를 꿈꿨고, 두현과 연애를 시작할 때쯤에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요리사를 꿈꿨던 정인. 두현과 결혼한 후에는 평범한 엄마를 꿈꿨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가 최선을 다했던 모든 일들이 좌절로 끝나버리자, 이제 아무 것도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려했던 정인. 그 모든 꿈이 좌절되자 ‘그냥 살아가는 일’에 몰두하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남편과의 사랑뿐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을 갈망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남편의 권태로운 반응 속에서 정인은 점점 지쳐갔고 더욱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부정적인 어조로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아내의 서글픈 속내를 알 리가 없는 두현은 ‘어떻게 하면 아내와 이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소문난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하라는 임무를 맡겨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정인은 아직도 남편에게 순수한 사랑을 호소한다. 그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정인은 젖은 눈길로 두현을 바라본다.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고... 우린... 아름다웠잖아.. 나... 아직 예뻐?” 한편, 정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린 성기는 <매일 그대와>를 불러주며 정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두현은 뒤늦은 질투심에 불타 정인에게 자신이 카사노바를 고용했음을 고백해버린다. 그 사람이 너를 진짜 사랑하는 것 같냐고, 그 사람은 바로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라고. 장성기를 통해 자신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자신감을 얻게 된 정인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린 두현. 장성기에게 아주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남편을 향한 사랑만은 변치 않았던 정인에게 남편의 배신은 너무도 뼈아픈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여린 마음을 지닌 정인에게 두현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불임클리닉에 다닐 결심까지 하고 있었던 정인은 자신의 등 뒤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의 내막을 알고 이혼을 결심한다. 정인의 마지막 라디오방송에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기고 있던 진심을 그제야 털어놓는다. 사람 사는 공간에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라고. 세탁기 소리도 좋고 라디오 소리도 좋으니, 어떤 소리든 자신의 공간을 ‘사람 사는 소리’로 채워야 한다고. “살다 보면 말이 없어집니다. 서로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무서운 일이죠.” “자신의 공간을 침묵이 삼켜버리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하지만 전 계속 말할 거예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을 거예요.” 아내에게 버림 받고 한 달 동안 혼자 지내며 정인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두현은 이혼을 신청하러 간 법원 앞 식당에서 어렵게 고백을 시도한다. 예전엔 그렇게도 시끄럽게 느껴졌던 그 잔소리, 당신이 투덜대는 목소리가 이제는 너무도 그립다고. “네가 항상 투덜대는 게, 외로워서 그런 거였구나. 내가 외로워보니까 이제야 당신 마음을 알겠더라고.” 정인은 이미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투덜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진정한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시작하고 싶다고. “장롱에서 면허증을 꺼내듯이 하나하나 꺼내고 싶어. 내 꿈도 꺼내고, 희망도 꺼내고, 용기도 꺼내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지겹도록 잘 알고 있다고 믿으며 아내를 자기 멋대로 재단하고 해석해버렸던 두현은 자신의 무심함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내에게 두 번째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휴대폰 진동 소리만 듣고도 거대한 지진이 난 줄 알고 벌벌 떨던 정인의 순진한 모습에 반했던 그들의 첫 데이트처럼, 그들은 이제 ‘다 알아버렸다’고 믿었던 서로에게 새롭게 ‘떨림’과 ‘설렘’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사랑이 끝난 줄로만 알았던 폐허’에서 다시 더 깊고 진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쉽게 해석되지 않는 당신, 그 어떤 철학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당신. 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당신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배려야말로 사랑을 지속시키는 힘이 아닐까.  
 
정여울, <사랑의 빈곤, 연애의 풍요를 넘어>,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138-140쪽.  
한순미 외저, <<우리시대의 사랑>>, 감성총서 9.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감성총서 제9권] 우리시대의 사랑, 13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