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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기(路程記)

구(懼)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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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위의 시, 이육사의 <노정기>에는 자신의 삶에 과정에 대한 고통스런 회고가 담겨있다. 시적 자아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은 ‘깨어진 뱃조각’을 통해 암시되고 있는 표랑의 바다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기에 제2연에서의 ‘서해로 밀항하는 짱크’는 바로 그러한 상황에 대한 상징적 제시에 해당된다. 이 시에서 그려지고 있는 삶의 현실은 ‘항상 흐릿한 밤’의 어두움이 그 전부를 이룬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나가야 하는 고통스런 노정에는 ‘지평선’도 결코 행복한 목표가 되지 못한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으로 표상되고 있는 ‘나’의 삶이 끝내 어둠과 고난을 함께 살아가는 행위로 결론지어지고 있는 것도 동일한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육사의 시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나’의 문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시대 의식을 일치시켜 나가고자 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육사는 현실이 강요하는 모든 고통을 정신적 의지로 극복하고 또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에 저항하고 있다. 이육사가 보여주고 있는 자기 인식의 방법은 그의 행동에의 의지로 인하여 삶의 현실 속에 더욱 절실하게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 의지를 끝내 버리지 않았으며 북경의 감옥에서 목숨을 거두게 될 때까지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02, 626~6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