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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의 감상

구(懼)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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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하얀 꽃잎 속엔 퇴색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선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보랏빛 들길 위에 황혼이 굴러 내리면 시냇가에 늘어선 갈대밭은 머리를 흩뜨리고 느껴 울었다. 아버지의 무덤 위에 등불을 켜러 나는 밤마다 눈 먼 누나의 손목을 이끌고 달빛이 파란 산길을 넘고. 
이 시는 김광균의 <해바리가의 감상> 전문이다. 해바라기는 서양에서 온 꽃이니 모더니즘 시에 즐겨 등장시킬 만했다. 작품 전편에서 색채 감각을 살려 장면 묘사를 하려고 애쓴 것도 다른 작품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작은 마을을 연상하고 잊혀진 고향을 생각해냈다. 마을, 집, 산천의 모습을 서술하면서 향수 타령을 하는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마음의 방황을 예사롭지 않은 방법으로 나타냈다. 밝은 빛깔을 존중하는 시인은 아버지 무덤에 등불을 켜야 절망에서 헤어날 수 있는데, 밤마다 눈먼 누나의 손목을 이끌고 가야 하는 갑갑한 형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향을 생각해서는 절망뿐이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서양 전래의 풍물로 관심을 돌리고, 감추어진 고뇌를 망각하기 위해 색채 감각 배합을 기발하게 하는 장난에 몰두했다. 모더니즘의 시를 쓴다는 것은 표면적인 고실에 지나지 않았다. 나약하고 서글픈 목소리에서 그런 상처를 감지할 수 있게 하기에, 김광균의 시는 불만스러우면서도 애착을 느끼게 한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5:근대문학 제1기], 지식산업사, 2005, 414~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