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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슈비츠의 두려움

구(懼)
부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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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때로는 자주 때로는 드물게, 공포로 가득한 꿈이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세부적으로는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가지인, 또 다른 꿈 속에 든 꿈이다. 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거나 일터에 있거나 푸른 전원에 가 있다. 그러니까 외관상으로는 긴장과 고통이 없는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 속에 있다. 그럼에도 미묘하고도 깊은 불안감을, 닥쳐오는 위협에 대한 뚜렷한 느낌을 갖는다. 아닌 게 아니라 꿈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또는 돌연히 매번 다른 식으로, 장면과 벽들과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흐물흐물 해체된다. 그리고 불안감은 더욱 짙어지고 명확해진다. 모든 것은 이제 카오스로 변한다. 나만 홀로, 온통 잿빛의, 무감한 무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라거 안에 있고, 라거 밖에 있는 그 무엇도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가족과 꽃이 핀 자연과 집은 짧은 휴가 또는 감각들의 속임수, 곧 꿈이었다. 이제 안의 꿈, 즉 꿈 속의 꿈은, 평화의 꿈은 끝이 난다. 차갑게 계속되는 바깥의 꿈속에서 나는 익히 알려진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고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짧고 낮은 한마디다.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오는 새벽의 명령 소리, 두려워하면서 기다리는 외국어 한마디, '브스타바치'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소설, [휴전]의 결말부이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레비와 같은 유대인들은 바로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정처없는 방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레비는 고향에 돌아오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난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꿈이라는 형태로 끊임없이 엄습해온다. ‘브스타비치’ 그것은 아우슈비츠에서 그들을 깨우는 기상 소리이다.  
프리모 레비, [휴전], 이소영 옮김, 돌베개(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