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5.18 최후항전 인터뷰(나명관씨)

구(懼)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이미 한시 반 정도 되니까 사방 군데서 막 총소리가 다 들리잖아요. 그라고 상황이 점점 암울해져가요. 아예, 끝나부렀다, 인생 끝나. 끝나는 걸로 마무리가 되가. 그래갖고 나와 가지고 전일빌딩을 돌아서 고개를 숙이고 꼭 도둑놈 도둑질 하러 가는 듯이 엎져[엎드려]갖고 도청 앞까지 가죠. 가가지고 이제 내가 세 번째 줄을 섰어. 한 명 두 명 딱 내 차례가 됐는데 우리 윤상원 열사가 떡 버티고 있는 것이, 아까 말씀 드렸지만. ‘총 쏠 수 있냐?’ ‘뭔 소리 하고 있어. 총 못 쏘는 사람이 어디가 있다요, (방아쇠를) 땡기믄[당기면] 나간디, 진짜. 주쇼.’ 긍께 안줘요 진짜. ‘아, 왜 그요?’ 내가 제일 마지막에 총을 가지러 갔다면은 아마 한참을 더 실갱이[실랑이]를 했을 것이야. 근데 내 뒤로 또 한 열 대명 있고 하니까 본인도 난감하지. 이걸 줘야 되냐, 말아야 되냐 이거. 그런 인간적인 갈등 하는 모습들이 순간 얼마 안 되지만은 나는 느낄 수가 있잖아요. 형님의 눈빛하며 얼굴 표정들이. 그래서 내가 정확히 말씀드리면은, 아! 여기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더 진지하고 더 심각해지기 전에 내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됐죠. ‘주쇼, 이 양반아. 걱정 하지 말고 줘라. 안 죽을랑께. 성이나 조심하쇼. 아, 성이나 조심해. 나 갈랑께.’ 총을 내가 채서 뺏었어요, 채서. 긍께 시민군 총 사령관이 진짜 개인적인 모든 생각은 접어놔야 되고 오로지 전략적으로만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행동을 해야 돼. 그때 상황에는. 완전 비상 시기니까. 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냉철하신 분이고 평소에. 개인적인 일과 공적인 일은 정확히 나누는 사람이여. 윤상원 열사가. 근디 그 상황이 되니까 총을 못주는 거예요 나한테. 나는 그걸 당연히 느끼죠. 아, 우리 형님이 왜 총을 이렇게 잡고 있는지 다 알잖아요. 그 때쯤 되면은 이제 다 내려 놨어 이제. 비상 걸리고 뭐 여성들 대피 시켜라 하고 총 받아오라 항께 끝나 브렀재. 그 정도 되면은 다 포기여. … 그래서 더 기억이 나. 표정이 아직도 생각이 나죠. 30년이 넘었어도.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원래 그 눈이 큰 편이에요. 적은 편이 아니야. 거기다가 딱 힘주면 아주 눈에서 불이 막 훨~ 타오르는. 이 멘트가 뭔 그 분을 미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근다니까. 딱 일이 있을 때 눈을 마주치면 웬만한 사람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어. 화르르 타오르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런 눈의 느낌 속에서 ‘왐마 이놈은 군대도 안 갔고 나이도 어린놈이 죽으믄 안 된디.’ 이런 생각 때문에 총을 주거니 받거니 할 때 그 표정이나 눈빛의 변화가 어땠겠어? 캄캄한 밤중이지만. 나 지금도 기억이 나. 그 눈이. 캄캄한 밤중이라도 눈빛은 다 보이잖아요  
들불야학의 일원으로 26일 밤, 27일 새벽 도청에 남았던 나명관씨가 30여년이 지난 후 회고한 26일 밤, 그리고 27일 새벽의 정경이다. 계엄군의 도청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남은 자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그래도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하지만 너무나 절절히 묻어나오는 인터뷰이다.  
나명관씨 생애사 구술면담기록 2011, 5.18기념재단  
이영진, “오월의 마음을 찾아서: 80년 오월 이후 한국 사회의 ‘부끄러움’의 계보학,” 2015년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학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