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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숭고한 승화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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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그림은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홀로 두지 않고 그 세상까지도 함께 하겠다는 듯, 그렇게 물로 표상된 죽음 앞에서도 서로 한 몸이기를 확인하는 장면인 것이다. 처연한 슬픔이 숭고함으로 승화되는 양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앞에 두고 슬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는 못하게 된 까닭일까? 「공무도하가」가 슬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획득한 것은 아마도 조선의 사대부들에 의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 노래가 ‘열’의 표상(김명희, 「<공무도하가>의 역설적 구조」)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애이불비가 추구하는 유교적 이념인 중화를 열이라는 이념적 표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하나의 장치였을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공무도하가」를 설명하는 매개어인 애이불비는 작품 자체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 되고 만다. 백수광부의 처가 취한 죽음은 일면 슬픔의 극복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또한 병적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애초부터 ‘불비’가 상정될 수 없으며, 또한 애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이 열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로 포장됨으로써 조선시대 이후 「공무도하가」는 정당하게 애이불비를 성취한 노래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사의 만시는 이런 만들어진 애이불비의 지점을 벗어난다. 그리고 아내와 자신의 죽음을 맞바꾸자고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불비를 완성하고 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문과 만시에서 절절하게 표현되는 슬픔이나 비통함은 바로 이런 장치의 완성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태성, <죽음, 그 시공의 초월적 변주>,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70-171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7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