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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안개에 서린 설움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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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대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인왕제색’이라는 제목 그대로 인왕산에 큰 비가 온 뒤 막 갠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화강암으로 된 인왕산의 흰 바위는 비에 젖어 검게 표현되어 있고, 산허리에는 자욱이 비안개가 휘감고 있으며, 하단에는 안개에 가려진 기와집 지붕이 언뜻 보인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 쓰인 간기에 의하면 이 그림을 그린 때는 신미년(1751), 정선 나이 75세 때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만년 작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의 만년 대표작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그 내면에 담긴 애틋한 이야기가 보는 이의 감동을 더한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그림 속 장맛비가 그친 인왕산은 맑게 개어 있으면서도 어딘지 무거운 비장감이 감돈다. 이 그림을 그린 1751년 윤 5월 29일에 정선의 평생지기인 사천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세상을 떠났고, 이 그림은 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아 그린 것이라고 정선 연구가인 간송미술관 최완수 소장은 유추하였다. 그런데 <인왕제색도>에 그림을 그린 날짜가 정확하게 적힌 것은 아니고 다만 ‘신미윤월하완(辛未閏月下浣)’이라고만 쓰여 있다. 이병연이 세상을 떠난 29일 이후에 그렸다면 오랜 벗을 잃은 절망감을 담아 그렸을 것이고, 29일 이전이라면 평생의 친구를 잃을지 모르는 안타까움에 그의 쾌차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1751년 19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이레 동안이나 지루한 장맛비가 내렸고 오후가 되어서는 완전히 개었다고 한다. 바위로 된 정상부에서 폭포처럼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나 비안개가 아직 산허리를 감고 있는 모습이 비가 막 갠 25일 무렵 그린 것이 아닌가 유추하기도 한다. 사천 이병연과 겸재 정선은 인왕산이 마주 보이는 백악산 기슭에 이웃해 살면서 다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그림과 시를 주고받으며 평생을 교유하였다. 둘은 당대의 대 문장가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 ~1722) 문하에서 동문수학을 해 겸재는 진경화가로, 사천은 진경시인으로 당대 최고봉에 올랐다. 이들은 그림과 시로써 조선 성리학에 입각한 문화 운동인 ‘진경문화’의 중심 역할을 한 것이다.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11년 전인 1740년 초가을에 정선이 양천(陽川,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근처)현령으로 부임해 가자 둘은 서로 그림과 시를 주고받기로 약속을 하였고, 이렇게 하여 주고 받은 시화를 모은 시화첩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간송미술관 소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시와 그림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이병연을 위해 흘린 정선의 눈물로 <인왕제색도>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정선은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온 힘을 다해 붓에 실었다. 붓을 뉘어 죽죽 내리 그은 거대한 암봉과 바위 사이에 세차게 쏟아지는 세 개의 작은 폭포, 그리고 하단에 가득한 비안개는 윤 5월 하순 한 여름 인왕산의 슬픔을 오롯이 전해준다.  
 
이선옥, <눈물로 그린 그림>,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38-140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3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