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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Hate Me!”, 타블로의 눈물과 긍정의 힘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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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힐링캠프>는 최근 방송(11월 5일)에서 적잖이 민감한 이슈의 주인공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공동진행자 가운데 한 명인 이경규는 이 날의 초대 손님인 타블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분은 정말 ‘힐링’이 필요한 분입니다. 미움의 아이콘!, 마음고생의 아이콘!, 눈물의 아이콘! 나와 주세요!”. 소개가 끝나자 타블로는 “Don't Hate Me!(나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영어가 씌어있는 사각의 피켓을 양손으로 든 채 입을 벌려 환하게 웃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뛰어 들어왔다. 타블로는 ‘에픽하이’라는 힙합 그룹의 멤버이자 작곡가로 2003년 데뷔 이후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다가 2009년말 일명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으로 불리는 비이성적 학력 의혹제기에 휘말려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음악활동을 사실상 정지당한 채 엄청난 시련을 겪은 장본인이다. 최근 이 사건은 의혹제기의 당사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법원의 최종 판결로 일단락되었다. 그간 타블로의 학력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가 제시된 상태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의혹제기자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아 이 사건은 ‘인지부조화’ 현상과 관련한 사회심리학적 주제로 다루어졌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엄청난 수의 대중들(인터넷 카페 ‘타진요’의 회원 수는 한 때 2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이 가세한 ‘집단 이지메’의 희생양이 되었던 타블로는 고통어린 체험에 대한 ‘힐링’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의 적절한 주인공이었음에 분명하다. 타블로와 ‘타진요’ 사건은 이미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 빅터 터너가 말한 ‘사회극’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힐링캠프>는 이제 이 드라마의 마지막 단계인 통합의 제의를 연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방송에서 타블로는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만 그는 애써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담담하게 털어놓는 그간의 고통의 체험이 시청자들의 공감과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유발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초점을 맞춘 것은 가해자들에 대한 유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데 있는 듯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타블로 자신이 대중의 미움을 받을 만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 적지 않은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상, 그러한 인정이 없이 이 엄청난 정신적 피해의 당사자가 어떻게 가해자들을 용서하겠는가. 방송 초입부터 타블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도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는데, 내가 내가 아니었고 만약에 이걸 지켜보고 있었으면 내가 타블로를 믿었을까? 이게 의심이 돼요 저도. ‘나라도 의심했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타진요 사건 이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타블로가 ‘밉상 캐릭터’로 불렸다는 진행자들의 다소 예민한 지적에도 타블로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 인정했다. (제가) 이렇게 앞뒤 생각 안 하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거기다가 ‘에픽하이’가 인기가 많고 잘 됐을 때 참 자만심도 많고, 힙합을 한다는 틀 안에서 굉장히 건방지고 이랬구나. 그래서 ‘쟤는 좀 지나치다’, ‘쟤는 좀 건방지다’ 그렇게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뒤돌아봐도, 까불까불거린다, 너무 직설적으로 때론 밉게 얘기한다 이런 생각 저도 들거든요. 실제로 한 시간 가량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타블로는 ‘타진요’ 회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의 언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블로 자신의 의도였을 수도 있고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의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의도였건 타블로가 웃는 모습으로 등장하던 첫 모습에서부터 이러한 의도는 이미 전제되어 있었다. “Don't Hate Me!”라는 피켓을 들고 온 이유를 묻는 진행자의 웃음 섞인 질문에 타블로는 이렇게 간결하게 대답했다. “좀 긍정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힐링캠프>의 타블로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의 치유 담론이 자기계발의 담론과 연결되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자기변화와 자기학습이라는 승리의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것, 이때 고통은 새로운 자아 형성과 성공을 위한 유용한 경험으로 간주된다. 이제 고통을 이와 같은 긍정적 이야기로 전환시키지 못할 경우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 나아가 실패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타블로와 <힐링캠프>의 진행자들이 함께 인정했듯이 타블로의 ‘밉상캐릭터’는 이른바 예능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3년간의 불행한 체험을 겪은 뒤 예능프로그램에 복귀한 타블로가 예전처럼 직설적일 수 있었다면, 피켓에 대한 앞서의 질문에 대해 “Don't Hate Me!”가 최근 출시된 타블로의 새 앨범 타이틀곡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이 만든 캐릭터의 희생양은 또 다시 방송을 이용하여 성공을 꿈꾼다. 냉혹한 감정 자본주의에서 ‘힐링’이라는 이름의 감정 노동은 이런 식으로 거래된다.  
 
최유준, <눈물의 교환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37-240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3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