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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과잉 현실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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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야구장의 김정민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유명인들이 자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중들의 눈앞에서 그들은 연기가 아닌 실제의 눈물을 스스로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왜 눈물이 없겠는가.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눈물을 만인 앞에 공개하려 들지는 않는 법이다. 유명인이건 일반인이건 실제 삶에서 흘리는 눈물이 매체를 타고 대중 앞에 공개된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눈물의 당사자와 사적으로 연관된 이들도 아니면서 그 눈물에 대해 격려든 비난이든 논평을 늘어놓는 일도 그렇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그러한 눈물의 대면에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의 방송 오락 프로그램 편성을 장악하고 있는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예능’이라는 은어로 포괄 지칭되는, 각본과 연출을 최소화하고 출연자들의 계산되지 않은 즉흥적 말과 행동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에서 그와 같은 눈물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힐링캠프>, <1박2일>, <남자의 자격>, <승승장구>, <정글의 법칙>,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텔레비전의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웃음과 오락의 요소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제작진들은 참가자들의 눈물을 시청자들에게 내보이는 데에도 세심한 정성을 쏟는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이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뜻밖의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이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이렇듯 일상화된 눈물의 제의는 한층 밀착된 거대한 감성 공동체의 형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일까?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눈물의 풍경은 우리 삶의 직접적 현실을 드러내기보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즉 가상의 이미지에 의해 겹겹이 매개된 과잉현실을 그려준다. 그것은 연출된 것이기도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하며 진정성이 있는 것이기도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실이기도 현실이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눈물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이퍼리얼리티의 인식론적(동시에 윤리적) 과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저 눈물에 어디까지 공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공감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라도 한 걸까? 2001년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허물어지는 장면을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CNN 뉴스 화면으로 지켜보았을 때 우리는 이미 이러한 하이퍼리얼리티를 충격적으로 체험한 바 있다. 수백 명의 승객이 탄 거대한 여객기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던 110층짜리 고층 건물과 정면충돌하는 믿기지 않는 참사를 실시간으로 바라 본 이들의 공통된 소감 가운데 하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충격적 스펙터클의 체험은 미국인들에게만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편의 한국인들에게까지 감성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트라우마의 핵심은 ‘슬픈 기억’에 있지 않다. 오히려 엄청난 비극적 사태에 직면하고서도 슬픔을 느끼기 어렵다는, 그 비극의 체험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론적 혼란이 그 트라우마의 진정한 핵심이었다. 911의 세계사적 체험이 웅변해주는 감성적․인식론적 혼란은 그 사건을 전후로 한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세계적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실재 같은 가상, 가상 같은 실재의 하이퍼리얼리티 속에서 대중들의 실재에 대한 도착화된 욕망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여기서 눈물이라고 하는 직접적 감정의 표현은 실재를 향한 대중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실현시켜주는 중요한 감성적 기제가 된다. 
 
최유준, <눈물의 교환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25-227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2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