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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의 불화, 세상과의 불화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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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60의 노동법 선생이다. 평생 여러 가지 슬픈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 가장 슬펐던 일은 몇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슬픈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슬픔 이상이었다. 내 평생의 슬픈 기억은 모두 아버지와 연관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절대적인 권력자였고 어머니와 자식들은 절대적인 복종자들이었다. 언제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신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도 나와 대립했다. 아버지는 국가였고 도덕이고 가치였다. 그러나 나는 10대초부터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그 뒤 지금까지 아버지와 나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아버지와 완전하게 다르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대 이후 나는 언제나 반항하는 자신에 대해 슬퍼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와 정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아마도 아버지도 그러했으리라. 부모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가치로 생각하신 분이기에 내가 반항한 지난 반세기 동안 아버지도 대단히 슬펐을 것이다.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면서 벌어진 부자 세대 갈등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 동안 부모의 생각이나 행동을 아들이 문제 삼아서는 안 되며 무조건 따르고 존경해야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서로 생각이 달라서 부모와 불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불효했다. 10대 이후 학교 공부보다는 딴 짓에 열중했고 결국 노동법 선생이 된 것도 내가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에게는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항상 가난과 전쟁의 참혹함을 말씀하셨고 축재와 출세를 바라셨다. 물론 그런 아버지의 바람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지난 60년 한국인의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아버지를 특별히 비난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나는 대한민국과 불화한 셈이다. 아니 그게 대한민국만의 문제일까? 내가 다른 나라에서 살았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나는 세상과 불화한 셈이었다. 20세기만 그러했을까? 그 전에는 얼마나 달랐을까? 세상과의 불화라는 말을 쓰니 어느 인기 있는 우익 작가가 생각난다. 그도 그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우익의 상징, 아니 효나 양반이나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의 상징이니 세상과 전혀 불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는 어리광을 부린 셈이다. 반면 나는 소수자다. 내가 사는 대구 경북에서는 분명히 소수자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지 않는 신문 잡지를 보고 그곳에 글을 쓰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평생 아버지가 내 글을 볼까 두려웠다. 그래서 책이 나와도 드린 적이 없다. 부모만이 아니라 친척 친구에게도 준 적이 없다. 내가 쓴 책을 좋아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가까운 친척 친구도 거의 없다. 관혼상제나 동창회 같은 것은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나는 혼자 살았다.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 내용이 의심스러운 소위 지방대학에서 평생 인기 없는 강의를 하고 독자가 거의 없는 글을 썼다. 인기 높은 강의를 하거나 그런 책을 쓸 생각도 없고 노력도 한 적이 없다. 그냥 먹고 살만 하고 권태롭지 않은 정도면 충분했다. 유일한 낙이라면 어쩌다가 만나게 되는 비슷한 사람들과 가볍게 한 잔 하고 1년에 한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다. 그것도 국내에서보다는 국외에서 말이다. 그런 지극히 느슨한 지적 공동체가 나는 좋다. 물론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나 만나 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상의 공동체에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내 유일한 기쁨이다. 슬픔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하게 즐거운 기쁨이다.  
 
박홍규, <슬픔의 공동체>,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06-208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0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