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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의미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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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만의 특유한 슬픔이란 것이 있을까? 가령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의 자살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대통령을 좋아한 사람은 대통령의 자살을 특히 슬퍼했다. 그 자살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도 강조되었다. 대통령과 함께 죽지 못해 슬프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죽음은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것이 아니라 봉건적인 충성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난이 가능하다고 해도 적어도 그렇게 죽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슬픔이 있었을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죽음은 없었기에 다행이었지만 봄밤에 흩날리는 벚꽃 송이들과 함께 그려지는 ‘죽음의 미학’ 운운하는 일본 등에서는 아직도 가끔씩 보는 추종의 죽음이다. 그것이 일본인에게는 대단한 슬픔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슬픈 일이긴커녕 모멸스러운 비인간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인기인의 죽음을 따라 죽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대통령이나 인기인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 죽음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픔을 갖기 마련이라면 이를 특별한 우리 시대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슬픔이라면 그 전에 있었던 대통령의 타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대통령의 구속이나 그 자녀의 구속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모든 대통령이 자살이나 타살 또는 자신이나 가족이 형을 받는 것을 우리 시대의 슬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비자연적인 죽음을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여하튼 그런 대통령이나 인기인의 죽음이나 말로를 시대의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도 우리 시대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1980년 광주 학살도, 1961년 쿠데타도, 1950년 전쟁도, 1945년 분단도, 1910년 이후의 식민지도, 또는 그동안의 수많은 인권 침해나 비극적인 사건도 모두 우리 시대의 슬픔을 낳은 것들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시대 자체가 아예 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유독 우리 시대만의 것일까? 그런 정치적 사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도 슬픈 사건들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슬픔에 대한 동감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슬픔이 조선시대 나아가 한반도의 문화적 본질이나 특성 또는 민족성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경우 슬픔만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 등 여러 감정의 복합체로 한(恨)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하고 그 말의 특별한 의미를 강조하는 경향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영원한 본질이나 성격은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그런 정서적 본질로서 한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슬픔은 있다. 기쁨이나 분노와 함께 슬픔은 있다. 우리 시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만이 유독 슬픈 것은 아니다. 도리어 우리보다 더욱 슬픈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있다. 이 글은 우리 시대의 특정한 슬픔, 특히 그 역사적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보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몇 가지 슬픔에 대해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특히 공동체 속에서 소수자로서 살며 주체적 반란을 나름으로 경험한 바를 적어보고자 한다. 그 전에 도대체 이 글에서 말하는 슬픔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전을 보니 슬픈 마음이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슬프다’란 눈물이나 한숨이 나오며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한다. 또는 불쌍하고 원통한 느낌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뜻풀이로는 슬픔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가령 눈물이나 한숨이 나오지 않으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답답함과 괴로움, 불쌍함과 원통함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답답함과 괴로움, 불쌍함과 원통함으로 풀이하는 국어사전의 태도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우만이 아니라 집단적인 경우나 시대적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겠지만 눈물이나 한숨은 역시 개인적이고 생리적이다. 슬픔을 처음에는 노여움에 의한 사실의 부정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뇌에서 그 현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복받쳐 오는 감정이라고도 풀이한다. 이는 꽤나 과학적인 설명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슬픔이 반드시 분노나 사실 부정으로 시작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사전의 풀이는 한정적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경우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슬플 수 있다. 전혀 답답하지 않은 바다나 들판에서 노을을 보고도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밖에도 풍경에서 느끼는 슬픔은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또는 그냥 외로워서도 슬플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호퍼의 그림을 슬프다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게다가 그 외로움으로 인한 슬픔은 특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슬픔, 가령 ‘군중의 고독’이라고 말하는 사회적인 슬픔일 수도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슬픔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국내 사건이든 국외 사건이든, 과거 사건이든 현재 사건이든 말이다.  
 
박홍규, <슬픔의 공동체>,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03-20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0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