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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다운 죽음을 택한 인물들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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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오블로」의 이야기는 5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오블로와 가족들의 딱한 사연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무능하지만 따뜻하고 자상했던 아버지는 TV 출연 이후 후원금으로 도박에 빠져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고 만다. 후원금이 끊긴 후 술독에 빠져 살면서 밤마다 오블로를 구타하는 아버지에게, 오블로는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오로지 침대에 누워 스끼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동물과도 같은 생존을 지속해 나갈 뿐이다. 오블로를 TV에 재출연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음식물을 먹이고 방송국에 연락하기를 반복하던 아버지의 노력이 통했는지, 방송국에서는 오블로의 사연을 다시 내보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온다. 아버지에게는 몹시 기쁜 소식이었겠지만 스끼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지긋지긋한 삶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한다. 가족들 전체가 생존의 사슬에 매여 있는 삶을 증오했던 그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작품 「가나」가 죽음과 그 이후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아름답게까지 그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아내에게 한 통의 편지와도 같은 말을 건네는 화자는, 삶의 어느 순간보다도 오히려 더욱 평온해 보인다. 정지된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그의 시체는 바다 속을 부유하며 주변 풍경을 매우 아름답게 묘사한다. 살아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고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다. 뿐만 아니라 살아서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그는 아내에게 진실한 언어로 다가간다. 벙어리인 아내를 대신해 그녀의 성대 속으로 들어가 노래가 되어주고 싶어 하고, 아이의 이름을 노래라는 뜻의 ‘가나’로 지어준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돌던 때의 그는 국경을 다시는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죽음 이후의 그는 다르다. 바람보다 가벼워져서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국경을 넘어 가족에게 향하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자유롭다. 「굿나잇, 오블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을 결심한 후, 스끼는 오블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끗이 씻겨준다. 그리고 그날 밤, 오블로는 매일 자신을 괴롭히던 어둠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비로소 놓여난다. “어둠은 바람이 되어 시원해진 오블로의 가랑이 사이를 간질였고, 꽃이 되어 오블로의 몸 곳곳에 피었다.” 음식찌꺼기와 몸 곳곳에서 나는 악취로 가득했던 오블로의 침대가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향기로 가득 찼던 것이다. 가족들과 자신을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스끼의 모습은 「벽」에 나타나는 한 일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염전에서 대다수의 일꾼들은 인간이기에 앞서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기계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생존을 위해 명령에 순응하며 유령같이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일꾼9이다. 일꾼9는 반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노동력을 상실한 일꾼을 구타하라는 명령을 단호히 거부한다. 다른 일꾼을 벽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벽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존을 선택하는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일말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죽음이었다.  
 
류도향, 강애경, 정유미, <죽음의 세 가지 풍경>,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89-191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8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