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하늘 밖, 그만큼 먼 슬픔의 지점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이 작품에서 월하노인은 인간 세계에서 특히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준다는, 그래서 일명 중매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추사는 자신에게 부부의 연을 맺게 해 준 월하노인의 힘을 다시 빌리고자 한다. 부부의 연을 다하지 못했음에 절망하며, 자신이 얼마나 애통해하는 지를 그의 힘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존재로 인해 부부의 입장이 바꾸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자 함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배 중이었던 처지라 임종을 함께 하지도 못했던 데서, 그리고 예산과 제주도라는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거리에서 비롯된 슬픔이 절절히 맺혀 있음을 볼 수 있다. ‘천리외(千里外)’라는 시구는 그래서 곧 ‘천외(天外)’가 되는 것이며, 물리적 거리는 곧 심리적 거리를 대변한 채, 그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그림은 「도망」이라는 작품으로, 나무가 뿌리 내린 땅 속 어딘가에 묻힌 아내를 그리워하는 한 선비의 모습을 담아낸 장면이다. 아내가 묻힌 땅 밑은 물론 ‘천외’에 다름 아니다. 멍하니 나무만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에서 심연의 슬픔이 묻어난다. 이런 슬픔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추사는 부인을 위한 제문에서 전날의 희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상략) 어허, 어허! 나는 항양(桁楊)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가 뒤를 따른다 해도 내 마음은 일찍이 흔들려본 적이 없었다오. 지금 막 부인의 상을 당함에야 놀라 헤매며 피하고만 싶어 괴로우니 이 마음 부여잡아 붙들어 맬 곳도 없으니, 도대체 이는 무슨 까닭인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에게 모두 죽음이 있다 해도 오직 부인에게 죽음이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을. 죽음이 있어서는 아니 됨에도 죽음이라니. 그래 죽어서 지극한 슬픔과 더 없는 원한을 품어 장차 내뿜으면 그것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는 것이리. 족히 부자(夫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 항양보다 영해보다 더욱 더 심했던 게 아니겠소. (중략) 일찍이 놀리는 양으로 ‘만약 부인께서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습니다.’라고 계속 말했었지요. 부인께서는 이 입에서 나온 이 말에 크게 놀라 곧장 귀를 가리고 멀리 달아나려 하면서 듣고자 하지도 않았고요. 이는 진실로 세상의 부녀들이 크게 꺼리는 바이지만, 그 실상이야말로 이와 같음이 있으니 내 말이 다 희롱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답니다. (하략) (「부인예안이씨애서문」) 추사에게 있어 아내의 죽음은 죄인의 형틀보다도 혹은 외딴 곳으로의 유배보다도 더한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죽더라도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아내만은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런 아내의 죽음이었기에 모진 형틀과 험난한 유배가 안겨주는 고통보다도 더한 마음의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은 만시에서처럼 서로 바꾸어 태어나자는 말은 아니지만, 부인보다는 자신이 먼저 죽는 것이 낫겠다고도 하였다. 아마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을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케 살았으면 하면 절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굳이 희롱하는 듯 하면서도 희롱이 아니라고 강조한 까닭은 바로 이런 바람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래서 추사는 더욱 더 애통함을 지울 수 없었을 터였다. 
 
조태성, <죽음, 그 시공의 초월적 변주>,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65-167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6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