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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진 눈물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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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가수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의 일부분이다. 동백꽃은 꽃이 시든 후 떨어지는 대부분의 꽃들과 달리 한창 활짝 핀 상태에서 송이 째 떨어진다. 때문에 못다 이룬 한을 지닌 꽃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은 동백에서 설움과 눈물을 읽어내곤 한다. 제주 4·3사건을 그린 강요배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는 동백꽃으로 형상화 하여 <동백꽃 지다>(1991년), <꽃비>(2004년) 등을 그렸다. <동백꽃 지다>는 잔설이 남은 한라산 자락에 핀 동백 한 송이가 긴 꽃술 하나 꽃받침에 남긴 채 툭 떨어지는 순간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그림이다. 헐벗은 나무들 너머 눈 쌓인 계곡에는 토벌대의 기습을 받은 사람들이 동백꽃 빛깔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윤기 있게 푸른 잎에 싱싱한 꽃송이를 떨구고 있는 동백꽃은 채 피워보지도 못한 청춘을 그곳에 묻은 젊은이들의 넋이다. 비 오듯 지는 붉은 꽃송이들을 화면 가득 그려 넣은 강요배의 <꽃비>도 그 화사한 아름다움과는 달리 무수히 스러진 젊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다. 그가 4·3사건을 그린 그림들을 증언과 함께 묶은 화집 제목도 <<동백꽃 지다-강요배가 그린 제주 4·3>>이라 명명함으로써 핏빛 동백꽃으로 혈기왕성한 젊음의 죽음을 대신하였다. 제주 4·3과 광주 오월의 아픔, 그로 인한 슬픔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시국관련 시위로 인해 또다시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스러져갔다. 허달용은 시사성 짙은 주제와 함께 서정성 가득한 작품들로 이들을 달래었다. 그는 <낙화(落火)> 연작에서 지난한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동백이 그 생을 다하고 장렬히 지는 낙화(落花)를 흩뿌린 수묵과 함께 화폭에 담아 눈길을 끈다. 동백꽃이 지는 낙화를 그리고 제목은 불이 떨어진다는 ‘낙화(落火)’라 썼다.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를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漢字) 제목의 발음이 갖는 다의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함축적으로 그려냈다. 붉고 검게 흩어진 꽃 주변에 흩뿌려진 점점의 자국들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들고 있던 촛불에서 떨어진 촛농이자 그들이 흘린 눈물이며 핏방울이기도 하다. “이 땅의 흩어진 혈(血)을 모아 긴 겨울을 이기고 붉게 피어나는 마음. 그늘 속에 담담히 하늘을 향하는 붉은 낙화(落火)”라 쓴 작업노트 속의 글처럼 온 국민의 염원을 태운 촛불이 그만 꽃잎으로 내려 앉아 있다. 허달용의 또 다른 <낙화>는 4대강 사업을 몸으로 저지하다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의 초상을 검은 어둠 속에 그리고 하단에는 떨어지는 꽃잎을 다비의 화염처럼 그려 올려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뚝뚝 떨어진 먹물방울들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동백꽃 송이들은 못다 이룬 꿈을 간직한 채 먼저 간 이들의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근·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은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으로도 남아있지만 더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의 울음, 더 나아가 온 몸을 뚝 뚝 떨구는 한 송이 동백꽃으로도 표현되었다. 이들 작품들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려지며 단순한 사건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을 환기시키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선옥, <눈물로 그린 그림>,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54-155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54페이지    E-BOOK 바로가기